경건한 삶을 위한 생명의 양식

행6:8-15 "자유민들과 대조되는 스테반" (2021.5.16)

엘사
2021-05-18
조회수 193

신구약 시대를 막론하고 하나님이 죄인들을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나가는 방식은 동일합니다. 하나님은 먼저 자기 백성을 불러 강력한 은혜를 주십니다. 이후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해, 믿음을 지키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도들은 두 번 갇히고 두 번 공회에서 심문을 받았지만, 주께서 주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해 나감으로 구원의 백성들이 증가하였습니다.

기독교는 사람들에게 복음의 내용을 선포하고 설명하고 설득하는 종교입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도 오순절과 솔로몬 행각에서 설교한 베드로도 오늘 본문에 있는 스데반 집사도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했고 필요에 따라서 복음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설득했습니다. 초대교회 시절에 하나님께서는 복음 증거와 확장을 위해서 사도들뿐만 아니라 스데반과 같은 성도에게도 기사와 표적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스데반 집사가 기사와 표적을 행하면서 복음을 증거 하자 사람들의 이목이 스데반에게 집중되기 시작했습니다. 스테반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스데반은 자신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인 자유민들과 논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자유민들이란 예루살렘이 로마에 의해서 정복당했을 때, 노예로 끌려갔다고 해방된 후손들입니다. 자유민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유대인의 회당과는 구별된 회당을 만들었는데 종교관은 유대인들의 회당에 모이는 사람들과 동일했습니다. 자유민 회당에 모였던 사람들이 스데반을 공격한 이유는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마22:29).

스데반은 신앙의 경력은 짧았지만, 사도들이 증거 한 진리의 복음의 터 위에 견고히 서 있었고 말씀의 훈련을 잘 받았습니다. 다수의 자유민은 스데반과 논쟁했지만, 스데반을 당해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스테반이 바른 진리의 터 위에 굳게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바른 진리의 터 위에 있는 것입니다. 바른 진리의 터 위에 있는 사람만이 우리의 영원한 푯대 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영혼이 천국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스데반과 자유민들과의 큰 차이점의 첫 번째가 스데반이 진리의 터 위에 있는 것이었다면 두 번째는 스데반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었던 것입니다. 스데반은 은혜와 권능이 충만했고(8), 지혜와 성령으로 논쟁했습니다(10). 논쟁하는 그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 같았습니다(15). 자유민들은 사람들을 돈으로 매수했습니다(11),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하여 스데반을 공회로 잡아 왔고(12), 거짓 증인들을 세웠습니다(13). 진리의 터 위에 서 있었던 스데반은 계속해서 진리로 무장하고 나아갔지만 진리로 위장했던 자유민들은 사람들을 매수하고 거짓으로 선동했습니다.

거짓 증언자들은 공회에서 스데반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했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가장 큰 죄는 신성모독입니다. 유대인들에게 가장 거룩한 곳은 성전이요 가장 중요한 것은 율법입니다. 자유민들은 스데반의 죄목을 성전과 율법을 거스른 신성모독 죄로 몰아갔던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나사렛 예수가 성전을 헐고 모세가 준 율법을 고치겠다고 스데반이 말했다는 것입니다(14). 자유민들이 스데반에게 씌운 죄목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에게 씌웠던 죄목과 동일했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자의적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잘못된 율법주의 빠진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신 적은 있어도 율법 자체를 부정하신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모독하신 적도, 성전을 헐겠노라고 말씀하신 적도 없습니다. 유대인들과 자유민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변형시킨 것입니다. 자유민들이 스데반에게 유대인들이 씌웠던 죄목과 동일한 죄목을 씌운 것은 그 죄목으로 백성들의 마음을 얻어서 예수님을 죽이는데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동일한 죄목이라면 스데반도 많은 백성의 마음을 얻어서 죽일 수 있을 것으로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충만했던 스데반은 거짓 증언자들에게 모함을 받으면서도 천사의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15).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했기 때문에 얼굴만큼은 위축되거나 초조해하지 않고 천사의 얼굴을 할 수 있었습니다. 스데반이 복음 증거자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해 갈 수 있었던 것은 진리의 터 위에 견고히 서 있었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이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거짓 증언자들의 모함 속에서도 은혜 충만했던 스데반의 얼굴은 하나님 존전에 있는 천사들처럼 영광스러울 수 있었습니다.

스데반을 보면서 우리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들을 교회 안과 밖에서 잘 감당해 나가고 있는지, 그 일을 감당해 나가기에 충분한 진리의 말씀의 터 위에 서 있는지,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한지, 주의 일을 하는 내 얼굴도 하나님의 영광으로 사로잡혀 있는지를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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