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한 삶을 위한 생명의 양식

행13:38-41 "비시디아 안디옥 사람들이 알아야 할 것" (2021.9.26)

엘사
2021-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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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 이미 형성되어 있는 신념은 잘 바뀌지 않습니다. 성경을 보는 관점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관점은 교회사 이천 년 동안 이어져 온 주류 해석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어떤 목회자들과 성도들은 성경을 정치적인 안목 또는 사회적인 안목으로 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원래 성경을 주신 목적을 생각하지 않습니다(요20:31). 이런 관점을 먼저 접하게 되면 바른 성경 관이나 바른 믿음을 갖기가 어려워집니다.

비시디아 안디옥 회당에서 바울의 설교를 듣고 있었던 유대인들과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도 그랬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보고 외우면서도 구주 예수님에 대해서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잘못된 성경 관과 신앙관이 형성되면 변화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을 듣다 보면 누구라도, 어떤 신념을 가졌든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확신했기에 성경에 대해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한 것입니다.

바울은 비시디아 안디옥 회당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기를 원했습니다. 바울은 두 가지를 알려주고 싶어 했습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최고의 관심은 죄 문제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인간이 타락하고 하나님과 원수 된 관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망과 부끄러움은 언제나 우리 가까이에 있습니다. 죄의 대가로 주어진 사망으로(롬6:23) 인해서 사람들은 영혼이 죽고 육체가 죽습니다. 죄가 사해진다는 것은 사망과 부끄러움의 문제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을 보면 예수님을 통해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통해 사망의 문제가 해결된 사람은 영혼이 살아나 하나님을 알게 되고 장차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죽었던 몸이 다시 살아나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살게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게 되면 사망의 문제뿐 아니라 부끄러움의 문제도 해결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십자가에서 죽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죽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셨습니다(히12:2). 죄인처럼 죽는 십자가 죽음은 이미 예고된 것이었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는 부활, 승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는 영광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을 약속했습니다(롬9:33,10:11).

두 번째는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는 ‘칭의’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 칭함을 받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칭의를 통해서 우리의 모든 죄와 죄책이 사라지고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죄는 하나님과 원수 된 관계를 만들고 죄책은 우리를 사망으로 이끌어 가지만 칭의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켜주는 은혜의 방편입니다. 구주 예수님을 오해했던 유대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는 방법도 오해했습니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게 되고자 했습니다. 칭의의 주권자가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칭의는 내 안에서 나의 행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의도나 행위와 상관없이 내 밖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칭의는 하나님께서 나의 타락한 본성을 보면서 의롭게 여겨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보면서 의롭게 여겨주시는 것입니다. 아담의 타락한 본성이 우리에게 전가되듯이 예수님의 의로움이 우리에게 전가되는 것입니다. 칭의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더욱 깊어지고 성숙되어 지는 것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인생에서 단 한 번 발생하는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번 예수를 믿고 힘입은 사람들은 영원히 의롭다 여겨주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칭의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칭의가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께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설교는 비시디아 안디옥 회당에 모여 있던 사람들의 생각이나 성경 관이나 신앙관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습니다. 회당에 모여 있던 사람들에게 바울의 설교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씀이었습니다. 바울의 설교는 지금까지 자기들이 살아왔던 신앙의 가치관을 완전히 뒤엎는 것이고 완전히 다른 삶의 방식을 요구하는 말씀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에 대한 말씀을 들으면서도 믿지 않는 비시디아 회당에 모인 사람들에게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고 경고했습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들에게 예고한 것은 멸망이라고 말씀합니다. 주 예수에 대한 말씀을 듣고도 믿지 않는 자들은 멸망할까 조심해야 합니다. 바울의 경고는 오늘날 이 시대에도 해당되는 경고입니다. 예수에 대한 말씀을 듣고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장차 멸망당하게 될 것입니다. 영원한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이고 예수님이 재림할 때,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당하지 않을 부끄러움 당하게 될 것입니다(요일2:28).

하나님은 오늘날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을 듣는 사람들에게도 동일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주 예수께서 강림하시는 날은 도적같이 올 것입니다. 신약성경 곳곳에서 사도들이 그리고 성경의 저자들이 경고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구주 예수로, 예수님을 힘입어 죄인들에게 일어나는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았던 심판보다 더 혹독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다시 회복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예수님의 재림의 때에는 그 기회마저도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은 마지막 날이 될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한 번 정립되어 있는 신념이나 믿음은 좀처럼 바뀌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사도 바울은 비시디아 안디옥의 회당에 있는 사람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변화될 것을 믿고 구주 예수님을 힘입어 죄 사함과 의롭다 칭함을 받을 수 있음에 대해서 증거 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예수님에 대해서 오해하는 사람들이 들어야 할 말씀은 동일할 뿐 아니라 성경의 진리에 대해서 오해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들이 증거 해야 할 말씀도 사도 바울이 증거 한 말씀과 동일하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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