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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15:12-41 "예루살렘 교회와 협력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안디옥 교회(2)" (2021.11.7)

엘사
2021-11-08
조회수 192

안디옥 교회는 할례를 구원의 조건으로 가르친 사람들이 등장함으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구원 교리에 관한 신학적인 논쟁을 안디옥 교회는 자체적으로 결정지을 수 없었기에 바울과 바나바와 대표 몇 사람을 예루살렘 교회로 파송했습니다. 안디옥 교회에서 발생한 구원에 대한 신학적 논쟁은 예루살렘 교회에서도 불붙게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할례와 율법을 구원의 조건으로 제시하는 바리새파 그리스도인들의 주장을 반박하는 근거는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이방인들로 구성된 백부장 고넬료 집안사람들과 유대인들로 구성된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이 동일한 방식으로 구원받은 것이었습니다(7-9). 둘째는 과거 유대인 조상들과 현재 예루살렘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유대인 그리스도인이 동일한 방식으로 구원받은 것이었습니다(10-11). 베드로는 하나님이 이방인과 유대인을 구원하는 방식이 시대에 상관없이 동일함을 강조했습니다.

야고보는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에게 복음을 증거하여 구원에 이르게 된 것은(14) 단순히 베드로의 경험이 아니라 성경 말씀을 성취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베드로의 사역은 선지자들의 말씀과 일치하는 사역이었습니다. 야고보가 말한 선지자는 아모스입니다(암9:11-12). 아모스9장11-12절에서 하나님이 무너진 다윗의 장막을 다시 세울 것이라 했고 하나님께서 허물어진 다윗의 장막을 다시 세우는 이유는 유대의 남은 자들과 하나님의 이름으로 구원에 이르게 된 이방인들이 주를 찾게 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유대의 남은 자들과 이방인들이 다윗의 후손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받게 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야고보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할 것 없이 구원은 할례나 율법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음으로 된다는 것을 아모스서를 근거로 주장한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와 베드로와 야고보의 주장은 같았습니다.

베드로와 바울과 야고보의 최종 증언을 들은 후 예루살렘 교회는 최종 결정을 내렸고, 결정된 내용을 안디옥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내서 알리기로 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할례를 구원의 조건으로 가르친 사람은 예루살렘 교회와 상관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공식적으로 밝혔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공식 입장을 안디옥 교회에 알리기 위해서 예루살렘 교회 성도였던 유다와 실라를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냈습니다(22,27). 예루살렘 교회는 안디옥 교회에서 불거진 구원에 대한 진리 외에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하라는 내용을 덧붙였습니다. 안디옥 교회 성도들의 대다수가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과거 우상을 섬길 때의 삶의 방식이 아직도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야고보는 모세의 율법에 근거해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우상과 관련된 모든 것에서 완전히 끊어 버리고 바른 신앙생활을 하기 바랬던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결정은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과 장로들과 안디옥 교회의 사도들과 대표들이 모여서 구원의 문제를 논의한 최초의 회의였고 예루살렘 교회가 안디옥 교회로 보낸 편지는 교회 역사에 있어서 최초의 공식문서였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회의와 공식문서를 통해서 할례와 율법을 구원의 조건으로 가르친 사람들을 이단으로 정죄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15장에서 시작된 예루살렘 교회 회의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교회는 각종 회의를 통해서 잘못된 가르침을 전파하는 사람들을 이단으로 정죄해왔습니다. 각 시대에 교회의 대표자들이 모여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부정하는 사람들(니케아 종교회의)과 신성과 인성 두 본성을 가지신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사람들(칼케돈 종교회의)과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부정하는 사람들(도르트 총회)을 이단으로 정죄했습니다. 지금까지 교회사 이천 년 동안 교회가 끊임없이 그 역할을 잘해 왔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사도들의 가르침의 터 위에 서서 바르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 성도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비롯해서 안디옥 교회의 대표자들이 구원의 문제를 결정짓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떠났을 때부터 간절한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보내온 편지를 보고 온 성도가 다시 하나가 되어 교회를 세워갈 수 있게 된 것을 기뻐했습니다. 안디옥 교회 성도들은 바른 진리 안에서 힘 있고 견고하게 성장해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른 성경의 진리가 이끄는 힘입니다.

안디옥 교회가 안정되자 바울은 바나바에게 1차 전도 여행 때 주의 말씀을 전했던 각 성을 재방문하여 성도들이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가 결정한 구원에 대한 진리를 그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나바는 1차 전도 여행 때 버가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던 마가 요한과 함께 가려고 했고(37) 바울은 반대하면서 서로 갈라서게 되었습니다(39). 바나바는 마가와 함께 배를 타고 구브로로 갔고 바울은 실라와 함께 육로로 수리아와 길리기아로(41) 그리고 더베와 루스드라로 다니면서 교회를 바른 진리로 견고히 세우는 사역을 했습니다(16:1).

이제부터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바울의 사역에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바울과 바나바, 마가, 실라가 모두 함께 전도 여행을 가는 것이 더 좋아 보이나, 하나님의 기쁘신 뜻은 바울이 마가 요한과 함께 가지 않는 것입니다. 함께 선교 여행을 가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안디옥 교회 성도들이 바울과 실라를 지지하고 응원한 것입니다(40). 두 번째는 바울과 실라가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면서 사역을 할 때 나타난 결과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결정을 그곳에 있는 교회에게 전하고 그들을 말씀으로 권면했을 때, 그곳에 있는 교회들이 진리 안에서 바른 구원관 아래 견고하게 서 갔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안디옥 교회와 예루살렘 교회처럼 바른 진리에 대한 관심입니다. 그리고 성경의 바른 진리를 지키기 위해서 그동안 교회가 결정한 진리를 따르고 보존하고 계승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진리 아래 있을 때, 바른 구원관을 가질 수 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믿음의 선배들이 결정한 성경의 진리를 우리가 지킬 때, 교회가 견고해질 수 있고 우리의 후손들도 현재 우리가 누리는 신앙의 복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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