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제504주년을 맞는 종교개혁 주일입니다. 종교개혁은 1517년 독일사람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당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이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종교개혁은 중세교회 천년 동안 성경에서 떠난 교회, 말씀과 상관없이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을 제자리로 돌아가게 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최초의 교회가 세워진 이후 교회는 약 3백 년 동안 로마에 의해서 혹독한 박해를 받았지만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종교의 자유가 주어지는 시대가 도래하게 되었습니다. 313년에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모든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는 밀라노 칙령을 발표했습니다. 콘스탄티누스의 밀라노 칙령은 박해를 받던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에 큰 은혜의 사건이었습니다. 밀라노 칙령 약 79년 후인 392년에는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가 기독교를 로마의 공식 종교로 선포했습니다. 이제 로마에서는 기독교 외에 다른 모든 종교는 믿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최초로 교회가 세워진 이후 약 3백년 만에 그리스도인들은 종교의 자유를 갖게 되었고 약 4백년 만에 기독교는 로마 제국에서 공식 종교가 되었습니다.
313년 기독교가 공인되고 392년 기독교가 로마의 공식 종교가 된 이후 거짓된 성도들이 교회에 유입되고 교회가 타락하고 성도들이 세속화되기도 했지만 초대교회는 대체적으로 바른 말씀의 토대 위에 서 있었습니다. 말씀을 바르게 가르쳤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목격했던 사도들이과 사도들에게서 직접 가르침을 받았던 속사도들이, 속사도들에게서 바른 가르침을 받았던 사람들이, 속사도들이 가르친 대로 진리의 말씀을 보존하고 계승해 오던 성도들이 그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람 중에는 4세기 중엽부터 5세기 초까지 살았던 어거스틴(354-430) 같은 대신학자가 있었습니다. 어거스틴(354-430)은 사도들과 속사도들의 신앙을 이어받아 모든 기독교 신학의 토대를 놓는 학문적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초대교회를 살았던 어거스틴의 신학은 칼빈을 비롯하여 종교개혁자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오늘날 교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
초대교회가 끝나고 중세교회가 되었을 때 교회는 부패했고 성도들은 무지몽매한 가운데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중세 천년은 476년 서로마제국의 멸망부터 1453년 동로마제국의 멸망까지 약977년의 기간입니다. 중세교회는 476년 서로마제국이 게르만족에게 멸망한 이후부터 1517년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키기 전까지 대략 1041년의 기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중세교회는 초대교회와는 달리 말씀을 바르게 가르치는 사람이 없었고, 성직자들은 성도들의 영혼을 인도하는 것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글을 모르는 사람들이 성직자가 되기도 했기에 성도들을 말씀으로 바르게 이끌 수 없었습니다. 학문적 지식이 높았던 성직자들은 세속권력을 추구하면서 교회를 자신의 권력 수단으로 이용했습니다. 중세교회의 최고 권력자였던 교황은 면죄부를 팔아 베드로성당을 더 화려하고 멋지게 지었습니다. 성도들은 삶이 힘들고 어려웠지만 교황의 거짓 가르침에 속아서 면죄부를 사서 죄 용서를 받으려고 했습니다.
중세교회는 글을 알지 못하는 성도들에게 신앙을 가르친다는 명목으로 성경에서 금한 성상을 만들어 숭배하게 했으며 초자연적이고 신비적인 현상을 성령의 역사인 것처럼 가르쳐 성도들의 신앙을 더 우매하게 만들었습니다. 중세교회는 성경에서 떠난 성직자들이 세속권력과 금권과 결탁하면서 교회는 타락해갔고 성도들은 타락한 성직자들의 가르침을 받으며 우매한 상태에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중세교회는 아모스 선지자가 말한 것처럼(8:11), 기근의 시대였습니다.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의 시대였습니다.
영적인 암흑의 시대, 말씀의 기갈의 시대에 루터는 새로운 길을 여는 일을 했습니다.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성당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이는 루터는 중세 천년 동안 교회를 개혁하려는 사람들의 토대 위에 서 있었던 것입니다. 이후 칼빈을 비롯하여 수많은 개혁자가 바른 말씀에 대해서 고민했고 바른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이제 교회는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말미암아 초대교회처럼 바른 믿음의 토대 위에서 초대교회 성도들이 누렸던 신앙의 기쁨을 다시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의 신앙과 신학이 오백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영향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복과 은혜를 누릴 뿐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많은 교회의 모습을 보면 다시 중세교회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중세교회처럼 권력과 돈이 가장 중요한 수단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교회가 물질주의, 번영주의에 물들고 있습니다. 중세시대의 교황과 성직자들처럼 목사가 교회에서 제왕적 지위를 행사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가 말씀에서 떠났기 때문이며 종교개혁자들의 개혁의 원리를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신칭의’ 때문이라고 엉뚱하게 말합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이신칭의’입니다. ‘이신칭의’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그동안 교회가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식으로 가르쳤기 때문에 오늘날 교회가 중세교회처럼 타락하고 부패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그동안 교회가 그들의 주장처럼 ‘이신칭의’교리를 잘못 가르쳐 온 것은 사실이나,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또다시 강력하게 중세교회로 돌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신칭의’를 강조하지 않으면 중세교회처럼 행위를 강조할 수밖에 없습니다.
타락하고 부패한 중세교회의 모습을 보이는 오늘날 교회를 보면서 진단을 잘해야 합니다. 가장 바른 진단은 새로운 학문인 것처럼 말하면서 성경에서 말하는 진리요, 전통적인 교회의 가르침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초대 교회의 사도들의 가르침과 종교개혁자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입니다. 구원에 이르는 은혜와 믿음은 하나님이 선물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값없이 받았지만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에서 죽게 하신 엄청난 값을 치루셨습니다. ‘이신칭의’는 결코 믿기만 하면 구원에 이를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는 믿음이 무엇을 포함하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와 믿음을 주시기 위해서 친히 치루신 그 값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가 타락하고 부패한 중세교회가 되어가는 이유는 ‘이신칭의’ 때문이 아니라, 중세교회처럼 ‘이신칭의’ 교리에서 떠나있기 때문입니다. 교회 개혁의 열쇠는 인간의 행위에 있지 않습니다. 인간의 행위를 강조하지 않고 ‘이신칭의’ 교리를 믿었던 초대교회 성도들과 종교개혁 시대를 살았던 성도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치루신 희생의 큰 대가를 감사하고 믿는 믿음으로 살아갔으며, 좁고 험한 십자가 길을 가는 기꺼이 따라 갔습니다. 교회가 타락하지 않고 영혼이 어두워지지 않도록 언제나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면서 살아갔습니다.
교회 개혁의 열쇠는 ‘이신칭의’ 교리에 있습니다. ‘이신칭의’의 교리를 믿고 합당한 삶을 사는 사람만이 교회 개혁을 이룰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 주일을 맞이하여 교회 개혁의 열쇠는 ‘이신칭의’의 교리를 온전히 알고 지키는 것에 있음을 다시 한번 깊이 있게 생각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제504주년을 맞는 종교개혁 주일입니다. 종교개혁은 1517년 독일사람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당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이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종교개혁은 중세교회 천년 동안 성경에서 떠난 교회, 말씀과 상관없이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을 제자리로 돌아가게 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최초의 교회가 세워진 이후 교회는 약 3백 년 동안 로마에 의해서 혹독한 박해를 받았지만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종교의 자유가 주어지는 시대가 도래하게 되었습니다. 313년에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모든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는 밀라노 칙령을 발표했습니다. 콘스탄티누스의 밀라노 칙령은 박해를 받던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에 큰 은혜의 사건이었습니다. 밀라노 칙령 약 79년 후인 392년에는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가 기독교를 로마의 공식 종교로 선포했습니다. 이제 로마에서는 기독교 외에 다른 모든 종교는 믿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최초로 교회가 세워진 이후 약 3백년 만에 그리스도인들은 종교의 자유를 갖게 되었고 약 4백년 만에 기독교는 로마 제국에서 공식 종교가 되었습니다.
313년 기독교가 공인되고 392년 기독교가 로마의 공식 종교가 된 이후 거짓된 성도들이 교회에 유입되고 교회가 타락하고 성도들이 세속화되기도 했지만 초대교회는 대체적으로 바른 말씀의 토대 위에 서 있었습니다. 말씀을 바르게 가르쳤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목격했던 사도들이과 사도들에게서 직접 가르침을 받았던 속사도들이, 속사도들에게서 바른 가르침을 받았던 사람들이, 속사도들이 가르친 대로 진리의 말씀을 보존하고 계승해 오던 성도들이 그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람 중에는 4세기 중엽부터 5세기 초까지 살았던 어거스틴(354-430) 같은 대신학자가 있었습니다. 어거스틴(354-430)은 사도들과 속사도들의 신앙을 이어받아 모든 기독교 신학의 토대를 놓는 학문적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초대교회를 살았던 어거스틴의 신학은 칼빈을 비롯하여 종교개혁자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오늘날 교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
초대교회가 끝나고 중세교회가 되었을 때 교회는 부패했고 성도들은 무지몽매한 가운데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중세 천년은 476년 서로마제국의 멸망부터 1453년 동로마제국의 멸망까지 약977년의 기간입니다. 중세교회는 476년 서로마제국이 게르만족에게 멸망한 이후부터 1517년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키기 전까지 대략 1041년의 기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중세교회는 초대교회와는 달리 말씀을 바르게 가르치는 사람이 없었고, 성직자들은 성도들의 영혼을 인도하는 것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글을 모르는 사람들이 성직자가 되기도 했기에 성도들을 말씀으로 바르게 이끌 수 없었습니다. 학문적 지식이 높았던 성직자들은 세속권력을 추구하면서 교회를 자신의 권력 수단으로 이용했습니다. 중세교회의 최고 권력자였던 교황은 면죄부를 팔아 베드로성당을 더 화려하고 멋지게 지었습니다. 성도들은 삶이 힘들고 어려웠지만 교황의 거짓 가르침에 속아서 면죄부를 사서 죄 용서를 받으려고 했습니다.
중세교회는 글을 알지 못하는 성도들에게 신앙을 가르친다는 명목으로 성경에서 금한 성상을 만들어 숭배하게 했으며 초자연적이고 신비적인 현상을 성령의 역사인 것처럼 가르쳐 성도들의 신앙을 더 우매하게 만들었습니다. 중세교회는 성경에서 떠난 성직자들이 세속권력과 금권과 결탁하면서 교회는 타락해갔고 성도들은 타락한 성직자들의 가르침을 받으며 우매한 상태에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중세교회는 아모스 선지자가 말한 것처럼(8:11), 기근의 시대였습니다.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의 시대였습니다.
영적인 암흑의 시대, 말씀의 기갈의 시대에 루터는 새로운 길을 여는 일을 했습니다.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성당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이는 루터는 중세 천년 동안 교회를 개혁하려는 사람들의 토대 위에 서 있었던 것입니다. 이후 칼빈을 비롯하여 수많은 개혁자가 바른 말씀에 대해서 고민했고 바른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이제 교회는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말미암아 초대교회처럼 바른 믿음의 토대 위에서 초대교회 성도들이 누렸던 신앙의 기쁨을 다시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의 신앙과 신학이 오백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영향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복과 은혜를 누릴 뿐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많은 교회의 모습을 보면 다시 중세교회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중세교회처럼 권력과 돈이 가장 중요한 수단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교회가 물질주의, 번영주의에 물들고 있습니다. 중세시대의 교황과 성직자들처럼 목사가 교회에서 제왕적 지위를 행사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가 말씀에서 떠났기 때문이며 종교개혁자들의 개혁의 원리를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신칭의’ 때문이라고 엉뚱하게 말합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이신칭의’입니다. ‘이신칭의’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그동안 교회가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식으로 가르쳤기 때문에 오늘날 교회가 중세교회처럼 타락하고 부패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그동안 교회가 그들의 주장처럼 ‘이신칭의’교리를 잘못 가르쳐 온 것은 사실이나,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또다시 강력하게 중세교회로 돌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신칭의’를 강조하지 않으면 중세교회처럼 행위를 강조할 수밖에 없습니다.
타락하고 부패한 중세교회의 모습을 보이는 오늘날 교회를 보면서 진단을 잘해야 합니다. 가장 바른 진단은 새로운 학문인 것처럼 말하면서 성경에서 말하는 진리요, 전통적인 교회의 가르침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초대 교회의 사도들의 가르침과 종교개혁자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입니다. 구원에 이르는 은혜와 믿음은 하나님이 선물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값없이 받았지만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에서 죽게 하신 엄청난 값을 치루셨습니다. ‘이신칭의’는 결코 믿기만 하면 구원에 이를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는 믿음이 무엇을 포함하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와 믿음을 주시기 위해서 친히 치루신 그 값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가 타락하고 부패한 중세교회가 되어가는 이유는 ‘이신칭의’ 때문이 아니라, 중세교회처럼 ‘이신칭의’ 교리에서 떠나있기 때문입니다. 교회 개혁의 열쇠는 인간의 행위에 있지 않습니다. 인간의 행위를 강조하지 않고 ‘이신칭의’ 교리를 믿었던 초대교회 성도들과 종교개혁 시대를 살았던 성도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치루신 희생의 큰 대가를 감사하고 믿는 믿음으로 살아갔으며, 좁고 험한 십자가 길을 가는 기꺼이 따라 갔습니다. 교회가 타락하지 않고 영혼이 어두워지지 않도록 언제나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면서 살아갔습니다.
교회 개혁의 열쇠는 ‘이신칭의’ 교리에 있습니다. ‘이신칭의’의 교리를 믿고 합당한 삶을 사는 사람만이 교회 개혁을 이룰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 주일을 맞이하여 교회 개혁의 열쇠는 ‘이신칭의’의 교리를 온전히 알고 지키는 것에 있음을 다시 한번 깊이 있게 생각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