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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15:1-11 "예루살렘 교회와 협력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안디옥 교회(1)" (2021.10.24)

엘사
2021-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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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까지 사도행전을 통해서 각 지역에 복음이 확산되고 교회가 세워지는 과정들을 살펴보았습니다. 바울은 수리아 안디옥 교회로 돌아온 후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에 이방인들이 믿음의 문을 열 수 있었으며, 그곳에 교회가 세워지게 된 것에 대해서 보고했습니다(14:27). 하나님의 함께 하심에도 불구하고 복음이 확산되고 각 지역에 교회가 세워지는 과정 속에서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지금까지 복음이 확산되고 교회가 세워질 때 수많은 위기가 있었습니다. 교회의 위기는 교회 안팎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교회 밖에서 위기가 시작되었을 때에는 성도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도행전에서 공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교회를 박해했을 때, 성도들이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스데반집사와 야고보 사도는 순교를 당했고, 베드로와 요한과 바울은 매 맞고 옥에 갇히고 돌에 맞고 도망 다녀야 했습니다. 또 다른 성도들은 박해를 피해서 흩어져야 했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에서 교회의 위기가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서 시작되었을 때에는 적극적으로 위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해왔습니다. 교회 안에서 시작된 위기는 성도들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1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바울과 바나바가 수리아 안디옥 교회에 있을 때, 처음으로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안디옥 교회의 위기는 교회 안에서 시작된 위기였습니다. 유대로부터 어떤 사람들이 안디옥 교회로 내려와서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할례를 받아야 할 것을 가르쳤습니다. 할례를 강조한 사람들은 바리새파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안디옥 교회 성도들은 사도들이 있는 예루살렘 교회에서부터 그리스도인들이 왔기 때문에 그들의 권위를 존중해주었고 가르치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그런데 할례를 구원의 조건으로 말하는 가르침은 진리에서 떠난 가르침이었습니다. 성도들이 거짓된 말씀에 현혹될 우려가 발생하자 안디옥 교회의 바울과 바나바는 즉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습니다(2). 이들의 가르침에 현혹되면 성도들의 구원관과 믿음관 교회관을 비롯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방향성이 완전히 진리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두 사도는 성도들이 바른 믿음을 위해서 할례를 강조하는 사람들과 오랫동안 논쟁했음에도 불구하고 안디옥 교회 안에서 쉽게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 그리고 교회 성도 중 몇 사람을 택하여 예루살렘 교회에 보내기로 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 있는 사도들과 장로들의 의견을 듣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에서 파송을 받은 대표들은 예루살렘 교회를 향해서 출발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까지 걸어서 가는 여정 길을 전도의 기회로 삼아서 두로와 시돈이 위치한 베니게(페니키아)와 사마리아를 지나갔습니다. 안디옥교회의 대표들은 이 지역에 이미 세워져 있는 교회를 들리면서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에 대해서 증거 했습니다. 두 사도는 구원관에 대해서 가르친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을 강조했습니다. 베니게와 사마리아에 있는 성도들이 바울의 말을 듣고 기뻐했습니다. 그들이 기뻐한 것은 자기들도 할례를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기들도 바른 믿음 안에 있었기 때문에 기뻐한 것입니다. 베니게와 사마리아에 있는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의 박해를 피해서 흩어진 성도들이 복음을 증거 하여 세운 교회였습니다. 박해를 피해서 흩어진 성도들이 전한 구원관과 두 사도가 증거 한 구원관이 동일했던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를 영접한 후 즉시 회의에 들어갔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과 장로들은 바리새파 그리스도인들의 주장과 바울과 바나바의 주장을 오랜 시간 동안 들었습니다(6-7). 양편의 논쟁을 들은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와 장로들은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베드로 사도와 예수님의 친동생인 야고보 사도의 말을 듣기로 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베드로와 야고보 사도의 주장은 바울과 바나바와 베니게와 사마리아 교회와 일치했습니다.

오늘 본문 7절부터 11절까지는 베드로의 주장이고 13절부터 21절까지는 야고보의 주장입니다. 먼저 베드로는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는 방식에 대해서 두 단계로 설명했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하나님이 이방인과 유대인을 구원하는 방식입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이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원하는 방식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주장했습니다. 베드로는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라고 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그들이란 7절에 있는 이방인들입니다. 7절은 구체적으로 사도행전 10장에 있었던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의 집안이 구원을 받게 된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과 이방인 교회 성도들에게 동일하게 성령을 주시고 동일한 믿음을 주셔서 구원하신 것입니다(7-9).

두 번째 단계는 구약시대를 살았던 조상들과 현재 예루살렘 교회 성도인 유대인들을 구원하는 방식입니다. 베드로는 할례와 율법을 구원의 조건으로 말하는 바리새파 그리스도인을 향해서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할례와 율법을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방해하는 것이며, 그리스도인들이 감당할 수 없는 멍에를 메게 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할례와 율법을 강조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무거운 짐이 될 뿐 구원과는 상관없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내린 결론은 하나님이 죄인 된 인간을 구원하는 방식은 시대와 인종을 불문하고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 예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신 일을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은혜로 된 것이고 그 사실을 믿는 믿음으로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율법을 준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언약 백성들에게 준 것이지 구원의 조건으로 준 것이 아닙니다. 언약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나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율법을 지키는 것입니다. 율법이나 할례와 같은 행위가 절대로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 구원은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죄인을 구원을 방식은 구약시대나 이천 년 전이나 오늘날이나 언제나 동일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이고 주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 우리가 할 일은 이 진리를 지키는 것이고 우리의 자녀들에게 이 이 진리를 계승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언제든지 분쟁의 소지가 될 수 있는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이때 우리가 할 일은 교회 안에서 발생한 문제를 조기에 해결할 수 있도록 힘을 모으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을 모으는 기준은 성경입니다. 특히 오늘날에도 그럴듯한 말로 인간의 선행과 같은 행위를 구원의 조건으로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행위는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은 이천 년 동안 바른 교회가 지켜 온 진리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지켜야 할 진리입니다. 또한 우리의 구원관이 흔들릴 때, 나의 행위에 집중하면 평안할 수 없습니다. 주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베푸신 은혜에 집중할 때 평안과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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