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알아주는 사람(고전8:1-13)

나의양식
2022-10-29
조회수 218
9

마라나타2022-10-29 16:18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머리속에만 있다면 참된 지식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은 사랑이 기초 되어야 하는 지식입니다. 나에게는 머리로만 아는 지식이 아닌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가?......우리가 우상의 제물을 먹든지 먹지 않든지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 다른 성도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느냐 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말로만 하지 않으셨습니다.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친히 우리를 사랑한다는 것을 십자가에 위에서 보여주셨습니다. 주님 나의 유익만 구하지 않게 하시고 다른 성도를 위해 교회를 위해 가정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며 섬기며 주님이 기뻐 하시는 삶을 살기를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머리속에만 있다면 참된 지식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은 사랑이 기초 되어야 하는 지식입니다. 나에게는 머리로만 아는 지식이 아닌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가?......우리가 우상의 제물을 먹든지 먹지 않든지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 다른 성도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느냐 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말로만 하지 않으셨습니다.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친히 우리를 사랑한다는 것을 십자가에 위에서 보여주셨습니다. 주님 나의 유익만 구하지 않게 하시고 다른 성도를 위해 교회를 위해 가정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며 섬기며 주님이 기뻐 하시는 삶을 살기를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밀알2022-10-29 18:28
바울이 세상의 우상이 아무것도 아니기에 우상에게 절했던 음식을 먹는다 해도 아무런 해를 받지 않고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이야기했지만, 믿음이 없는 연약한 성도가 이 모습을 보았을때 그것에 걸려 넘어질까 염려된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초신자이고, 믿음이 연약한 제가 하나님을 알기전에는 고민이 아니었던 문제가, 하나님을 알고 난후 생각을 해 본 문제였었습니다.
이번 복음말씀에 귀 기울여 들었습니다.
성경의 가르침대로 삶을 살아낼때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바탕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있다면, 내 지식이 옳다,그르다를 넘어서 내가 하는 행동으로 인해 성도들이 실족되지 않게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초신자이고, 믿음이 연약한 제가 하나님을 알기전에는 고민이 아니었던 문제가, 하나님을 알고 난후 생각을 해 본 문제였었습니다.
이번 복음말씀에 귀 기울여 들었습니다.
성경의 가르침대로 삶을 살아낼때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바탕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있다면, 내 지식이 옳다,그르다를 넘어서 내가 하는 행동으로 인해 성도들이 실족되지 않게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포도송이2022-10-29 19:53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로 고린도성도들은 서로간의 갈등을 일으킵니다.
바울의 해답은 갈등을 일으키는 지식이 아닌 서로간에 덕을 세우는 사랑. 곧 하나님을 사랑할 것을 권면합니다. 제물의 음식에 있지 않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인생의 삶의 방향과 초점은 삼위되시는 한분 오직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입니다.
이것이 다툼과 갈등을 없게하는 참된지식이며 바른지식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바른지식이 있다면 우상 제물의 음식에 관하여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것입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예수님이 보이신 낮아지심의 사랑을 바라봅니다. 십자가 위의 높아지심의 사랑을 바라봅니다.
바울과 같은 하나님께서 알아주는 자로 세워져 가길 원합니다.
참되고 바른지식은 한분 하나님을 믿는 믿음임을 알고 어떠한 갈등의 문제가 있다 한다면 지식이 아닌 사랑으로 주신 자유를 사용하고 또한 제한하며 지혜롭게 나아가야 할것입니다.
바울의 해답은 갈등을 일으키는 지식이 아닌 서로간에 덕을 세우는 사랑. 곧 하나님을 사랑할 것을 권면합니다. 제물의 음식에 있지 않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인생의 삶의 방향과 초점은 삼위되시는 한분 오직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입니다.
이것이 다툼과 갈등을 없게하는 참된지식이며 바른지식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바른지식이 있다면 우상 제물의 음식에 관하여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것입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예수님이 보이신 낮아지심의 사랑을 바라봅니다. 십자가 위의 높아지심의 사랑을 바라봅니다.
바울과 같은 하나님께서 알아주는 자로 세워져 가길 원합니다.
참되고 바른지식은 한분 하나님을 믿는 믿음임을 알고 어떠한 갈등의 문제가 있다 한다면 지식이 아닌 사랑으로 주신 자유를 사용하고 또한 제한하며 지혜롭게 나아가야 할것입니다.

임마누엘2022-10-29 22:38
하나님에 대한 바른지식이 있어야 하나님을 아는것이지만 성경지식의 홍수속에 사는 성도들은 아는만큼 교만해지는것도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잘 안다면 하나뿐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준 사랑을 깨닫는 것이고 깨달은 후에는 이기적인 삶이 아닌 이타적인 삶으로 변해야 되는게 맞습니다 개인의 유익보다는 공동체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고 선택과 결정을 하는 변화가 있어야 할것입니다 바울이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는것에 대해 음식에는 아무런 우상의 능력도 없지만 믿음이 연약한 성도가 실족하는것을 생각하여 평생 고기를 먹지 않는 선택은 자유를 제한하는것이지만 기쁨으로 선택한것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만큼 계명을 지키는것은 더 쉬워질것이고 말하고 행동하고 어떤 결정을 내릴때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를 먼저 생각하게 될것입니다 그럴때에 하나님이 우리를 알아주시리라 믿습니다 늘 부족하지만 부르심에 합당한 성도가 되도록 힘쓰겠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만큼 계명을 지키는것은 더 쉬워질것이고 말하고 행동하고 어떤 결정을 내릴때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를 먼저 생각하게 될것입니다 그럴때에 하나님이 우리를 알아주시리라 믿습니다 늘 부족하지만 부르심에 합당한 성도가 되도록 힘쓰겠습니다

무화과2022-10-30 00:30
우상에게 바쳐졌던 제물을 먹는 문제로 갈등이 있었던 고린도 성도들을 묵상하면서 주일날 예배 때 늘 읽는 기독교 윤리의 핵심인 십계명이 생각납니다.십계명에서 말씀하고 있는 사랑은 하나님을 바로 아는 참된 지식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공동체를 생각해야 하며 실천해야 하는 사랑입니다.그동안 우리의 신앙생활은 고린도의 연약한 성도들처럼 하나님의 참된 지식없이 습관적인 자신 중심적인 우상숭배 속에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말씀 앞에 겸손해집니다. 우상과 우상의 제물은 아무런 능력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아무 능력없는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로 인해 자유하게 되었고 말씀 앞에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이제 오로지 하나님의 참된 지식 가운데 공동체를 위해 덕을 세워가야할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참된 지식과 사랑 안에서 만이 연약한 성도를 위해 사랑을 실천 할수 있고 희생과 헌신이 발휘 될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자유케 된 우리는 믿음의 연약한 지체들을 위해 행동의 절제를 통하여 유익을 주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오직감사2022-10-30 09:37
분쟁의 원인이 되는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가장 큰 결정의 기준은 다른 성도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지, 다른 성도에게 덕을 세우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지, 다른 성도에게 유익이 되는 마음이 있는지를 보는 것이라 알게되었습니다. 내가 주인되고, 나를 높이는 교만한 자는 분쟁에 중심이 될뿐입니다. 내가 죽고, 다른 사람을 높이는 겸손은 분쟁을 해결하고 하나님이 알아주는 사람이 되는 복된 통로가 됩니다. 다른 성도들을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해 나의 생각과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 바른 지식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나의 마음을 보여드리는 길이라 생각하니...알게해주신 또 그렇게 살기 원하게 해주신 우리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엘사2022-10-30 09:45
사랑이 바탕이 되어서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 참된 지식으로 삶을 살아내어야 합니다. 몸과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참된 지식으로 덕을 세우는 일입니다. 머리의 지식이 높음만으로 교만할 것이 아니라 믿음이 연약한 성도를 생각하며 진정한 자유란 헌신과 사랑을 바탕으로 하는 것임을 실천해 나가야 겠습니다. 믿음이 굳건한 성도의 헌신과 사랑의 배려로 믿음이 연약한 성도의 믿음이 굳건하여 지고 성장해 나갈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알아주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중심을 보시고 계십니다. 성령님께서 우리가 바른 걸음을 내딛게 하시기를 소망합니다.

레이즈업2022-11-08 09:33
바른 지식이란 (내가 하나님을) 아는 것? 또는 (내가 하나님에게) 알려지는 것?
이런 질문을 제기해야 하는 이유는 고린도교회가 안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는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에 있지 않고 바른 지식을 소유하고 있는냐의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에 대한 질문에 곧바로 답하지 않고 어떻게 보면 전혀 상관없는 주제인 지식과 사랑의 관계를 먼저 설명하고 있습니다. 수면 위로 드러난 피상적인 문제는 언제나 수면 아래 깊숙이 존재하는 본질적인 문제로부터 파생합니다. 교회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풍성하게 보일지라도 그 사실로 인해서 마냥 즐거워 할 수만은 없는 것은 그 지식이 바른 지식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해 “모든 지식에 풍족하다”(고전1:5)고 긍정적으로 말하면서도 오늘 본문에서는 지식의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가 갖고 있는 지식이 언제든지 바른 지식에서 떠나 있을 수 있다는 위험성을 말해줍니다.
바른 지식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지금까지 “내가 하나님을 아는 것”에만 초점을 맞췄는데 본문 말씀가운데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바 되었다”(고전8:3)라는 표현을 통해 “내가 하나님에게 알려 진다는 것”이 중요한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바른 지식은 “내가 하나님을 아는 것”을 넘어 “내가 하나님에게 알려지는 것”을 포함합니다. 갈라디아서 4장 9절 에서도 "하나님을 알 뿐 더러 하나님의 아신바 되었다" 고 두 가지 사실을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순신 장군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할수 있으려면 내 편에서 이순신 장군을 잘 알아야 하지만 이순신 장군도 나를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친구, 연인 등 사회적 관계에서 동일하게 적용되는 원리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있다고 말할수 있으려면 내가 하나님을 알아야 하지만
하나님도 나를 알고 있어야(내가 하나님에게 알려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신 분이신데 하나님도 나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말이 안될 수 도 있는데, 성경을 보면 주의 이름을 열심히 부르고 주를 헌신적으로 섬기는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선언하신 장면(마7:23)을 볼 수 있습니다.
입술로는 주의 이름을 부르고 손과 발로 주를 섬겼지만 그들의 삶은 여전히 불법을 행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3:6)에도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향해 하나님을 보지도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였다고 비슷한 표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그 순간에 아브라함을 향해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창22:12)고 선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 자신의 사랑을 우리들에게 나타내 보여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각자는 실천적인 사랑을 통해 우리 자신이 하나님에게 알려지고 하나님은 비로소(이제야) 우리를 아신다고 선언하십니다.
내가 갖고 있는 지식의 사용이 형제의 양심을 약하게 하고 더럽힐 가능성이 있다면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기꺼이 제한해야 하며,
내가 갖고 있는 지식의 사용이 형제를 실족케 한다면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포기하는 삶을 살아갈 때 내가 하나님을 안다고 말할 수 있으며, 하나님은 비로서 나를 아신다고 선언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바른 지식의 성경적인 의미임을 묵상해 봅니다.
이런 질문을 제기해야 하는 이유는 고린도교회가 안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는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에 있지 않고 바른 지식을 소유하고 있는냐의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에 대한 질문에 곧바로 답하지 않고 어떻게 보면 전혀 상관없는 주제인 지식과 사랑의 관계를 먼저 설명하고 있습니다. 수면 위로 드러난 피상적인 문제는 언제나 수면 아래 깊숙이 존재하는 본질적인 문제로부터 파생합니다. 교회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풍성하게 보일지라도 그 사실로 인해서 마냥 즐거워 할 수만은 없는 것은 그 지식이 바른 지식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해 “모든 지식에 풍족하다”(고전1:5)고 긍정적으로 말하면서도 오늘 본문에서는 지식의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가 갖고 있는 지식이 언제든지 바른 지식에서 떠나 있을 수 있다는 위험성을 말해줍니다.
바른 지식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지금까지 “내가 하나님을 아는 것”에만 초점을 맞췄는데 본문 말씀가운데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바 되었다”(고전8:3)라는 표현을 통해 “내가 하나님에게 알려 진다는 것”이 중요한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바른 지식은 “내가 하나님을 아는 것”을 넘어 “내가 하나님에게 알려지는 것”을 포함합니다. 갈라디아서 4장 9절 에서도 "하나님을 알 뿐 더러 하나님의 아신바 되었다" 고 두 가지 사실을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순신 장군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할수 있으려면 내 편에서 이순신 장군을 잘 알아야 하지만 이순신 장군도 나를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친구, 연인 등 사회적 관계에서 동일하게 적용되는 원리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있다고 말할수 있으려면 내가 하나님을 알아야 하지만
하나님도 나를 알고 있어야(내가 하나님에게 알려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신 분이신데 하나님도 나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말이 안될 수 도 있는데, 성경을 보면 주의 이름을 열심히 부르고 주를 헌신적으로 섬기는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선언하신 장면(마7:23)을 볼 수 있습니다.
입술로는 주의 이름을 부르고 손과 발로 주를 섬겼지만 그들의 삶은 여전히 불법을 행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3:6)에도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향해 하나님을 보지도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였다고 비슷한 표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그 순간에 아브라함을 향해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창22:12)고 선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 자신의 사랑을 우리들에게 나타내 보여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각자는 실천적인 사랑을 통해 우리 자신이 하나님에게 알려지고 하나님은 비로소(이제야) 우리를 아신다고 선언하십니다.
내가 갖고 있는 지식의 사용이 형제의 양심을 약하게 하고 더럽힐 가능성이 있다면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기꺼이 제한해야 하며,
내가 갖고 있는 지식의 사용이 형제를 실족케 한다면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포기하는 삶을 살아갈 때 내가 하나님을 안다고 말할 수 있으며, 하나님은 비로서 나를 아신다고 선언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바른 지식의 성경적인 의미임을 묵상해 봅니다.

하늘소망2022-11-08 10:42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우상자체가 아무것도 아니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그래서 그들이 가진 지식의 분별로 아무런 양심의 거리킴없이 마음놓고 먹을 수 있는 권리를 행사 했습니다.그러나 이 행동은 아직도 과거의 우상숭배에 대한 부정적인 관념이 남아있는 성도들에게는 부담을 주었습니다.그래서 바울은 자유도 중요하지만 연약한 형제를 배려하고 생각하여 절제할 수 있는 지식,사랑이 있는 자유를 행사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만일 식물이 내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을 통해 아버지의 마음을 닮은 사도의 형제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저희가 갖고 있는 지식이 사랑을 거쳐 삶에서 구현되기를 바라시는것 같습니다.저의 작은 삶이 하나님 앞에 그런 모습으로 나타나지길 소망합니다.
'만일 식물이 내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을 통해 아버지의 마음을 닮은 사도의 형제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저희가 갖고 있는 지식이 사랑을 거쳐 삶에서 구현되기를 바라시는것 같습니다.저의 작은 삶이 하나님 앞에 그런 모습으로 나타나지길 소망합니다.
우리가 삶속에서 무엇인가 선택하고 결정하는데는 많은 것들이 영향을 줍니다 우리가 태어나면서 부터 경험하는 정치 경제 가치관 문화등 입니다 큰 문제의식을 갖지 못한채 당연히 살아온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분명한 기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에서 살아가며 크고 작은 선택의 순간에 그동안 우리에게 영향을 주었던 환경,경험,지식 대신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에 귀 기울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지식이 나아가야할 방향성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른 성도의 유익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나의 지식이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것에만 사용되는것이 아니라 다른 성도를 사랑하여 세우는 일에 사용되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온전하지 못한 연약한 성도를 세우기 위한 선택과 결정에는 꼭 수반되어야 할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진리안에서 마음껏 누릴 수 있는 나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입니다 제한한다는 것은 나를 얽매이게 하는것 같아 보이나 실상은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으로 풍성히 누리는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형제를 위해 기꺼이 제한한 자유를 통해 나와 한몸으로 세워진 지체가 강건해지고 이를 통해 내가 강건해지기 때문입니다 신비입니다!! 하나님이 알아주는 사람의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언덕위의 교회를 통해 바른 지식으로 가르치시니 감사합니다 이 지식이 교만한 지식이 되지 않고 덕을 세우는 지식이 되어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알아주시는 자로 종말의 때를 세상과 구별하여 살아가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