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신이 지쳐있을지라도(눅5:1~8)

코람데오
2023-02-18
조회수 94
11

포도송이2023-02-18 18:08
말씀을 보고 듣고 묵상하며 나의 신앙이 조금씩 변화되어 갑니다. 처음 예수님을 만난 베드로처럼 저의 삶의 목표가 예수님께 있음을 믿고 확신합니다. 전인격이 변화되어 예수님께로 나아갈때 무엇과도 바꿀수없는 기쁨과 감사가 있으며 때론 힘과 용기도 생겨납니다. 이는 말씀에 있습니다. 말씀되신 주님을 바라보고 말씀에 순종하며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예수님을 만난 베드로의 삶이었듯이 우리의 삶이 되고 믿음을 믿습니다. 나 된것은 하나님의 은혜이기에 더욱 감사함으로 주실 은혜의 복을 바라보며 나아갑니다.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의 삶으로 나아간 베드로의 삶을 묵상합니다.

밀알2023-02-18 18:35
일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삶은 베드로와 비슷합니다. 사람들은 많은 일 때문에 언제나 지쳐 있습니다. 내 뜻대로 세상일이 되지 않기 때문에 예민한 가운데 있습니다. 베드로가 심신이 지쳐 있을때 거룩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게 된 후 베드로는 예수님이 말씀할때 순종하고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려면,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내세우지 않고, 조건을 내걸지 않아야 합니다.
일이 해결되면, 내가 무엇이 되면, 내 소원이 이루어지면 주님을 따르리라는 믿음이 아니라, 먼저 주님의 말씀을 듣고 믿으면서 행복을 안고 시작하는 믿음을 가져야겠습니다.
복을 주신 예수님을 기억하면서 예수님을 위한 삶을 사는데까지 나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려면,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내세우지 않고, 조건을 내걸지 않아야 합니다.
일이 해결되면, 내가 무엇이 되면, 내 소원이 이루어지면 주님을 따르리라는 믿음이 아니라, 먼저 주님의 말씀을 듣고 믿으면서 행복을 안고 시작하는 믿음을 가져야겠습니다.
복을 주신 예수님을 기억하면서 예수님을 위한 삶을 사는데까지 나아가는 것입니다.

엘사2023-02-18 19:07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 때의 나도 베드로처럼 지친 삶이었습니다. 심신이 지쳐 힘들었을 때 예수님을 만난 것이 얼마나 큰 기쁨 이었는지 압니다. 베드로는 말씀을 듣고 순종했고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게서 인생의 목적을 찾게 되었고 예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나는 베드로처럼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지는 못하나 그렇게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나의 경험과 생각에 의지하기 보다는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려고 합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서서히 삶이 변화될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늘의 풍성한 은혜를 기대하며 살아가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베드로처럼

마라나타2023-02-18 20:32
베드로는 심신이 지쳐있을 때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이제는 예수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 또한 힘들고 지칠때 마다 주님만을 의지 하며 기도했고 그때 마다 나의에게 큰 힘과 위로가 되어 지금 까지 주님만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목표는 예수님 오시는 그날 까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임을 다시 한번 되새기면서
베드로처럼 말씀에 순종하며 귀 기울이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베드로처럼 말씀에 순종하며 귀 기울이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헤세드2023-02-18 20:47
하나님께서 심어주신 곳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중 베드로처럼 밤새 수고하였지만 고기도 잡지 못한채 힘없이 그물을 씻는 상황에 직면할때가 있습니다 목마르고 배고픔에도 불구하고, 어디에서 마시고 먹어야 함을 아는데도, 그저 지쳐있는 모습으로 머무르려 합니다 밤새 수고함으로 지친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배위에서 말씀을 전하실때 그 말씀을 들었을 것입니다 말씀의 자리에 베드로는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명하시는, 나의 밤새 수고한 경험에 의하면 어쩌면 결과가 뻔한 명령에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일어나 순종함을 봅니다 우리가 주의 말씀가운데 있을때 주의 목소리를 들으며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일을 행하신 하나님을 깨닫게 됩니다 순종하기전, 말씀 듣기전의 베드로에게 필요한것은 수고의 댓가인 많은 물고기인것 같아보였습니다 그것만이 만족을 줄수 있을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베드로에게 많은 물고기는 하나님을 발견하게하는 증거일 뿐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그리스도를 깨닫는 순간 모든 것(그의 만족이였던)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의 지친 삶에서 이끌어 주를 붙드는 삶으로 인도하시는 주님!! 지금도 우리에게 찾아와 주셔서 주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깨달으므로 주시는 위로와 만족과 기쁨으로 내 영혼이 생수의 강이 넘쳐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의 만족은 문제의 해결에 있지않고 모든것의 주관자 이신 하나님 한 분 이십니다

무화과2023-02-18 22:45
이땅에서 살아가면서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것은 날마다 예수님을 만남으로 기쁨의 삶,순종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이 세상에서는 위로와 만족과 기쁨이 있다한들 잠시 있다 없어지는 것이며 이 땅에서의 많은 수고를 하였지만 우리의 생각과는 다른 결과로 다가오기도 하고, 지치고 공허함으로 남기도 하고 좌절을 경험하기도 합니다.이때 주님은 베드로를 불러 주신 것처럼 우리를 불러주셔서 제자의 삶을 살도록 하셨습니다.우리는 순종할수 없지만 베드로가 주님을 만난 후에 주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 할수 있었던 것과 같이 예수님께 집중하면 내 생각과 경험을 내려놓을 수있게 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거룩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자신의 모든 삶의 터전인 것들을 내려 놓고 주님을 따를 수가 있었습니다.베드로가 고백 했듯이 저 또한 주님 앞에 죄인임을 고백하며 주님을 위해 내려 놓을 것이 무엇인지 주님께 촛점을 맞추어 봅니다. 나의 인생의 목표가 되신 주님께 의지합니다.

오직감사2023-02-19 08:00
모든것을 버려두고 예수님만 따르면...
생활의 폭이 좁아지고 정신적으로 편협해지는건 아닌지..세상적으로 생각이 들지만
베드로의 인생을 보면 완전 반대임을 알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으면 이스라엘 작은 마을의 어부로 살았겠지만 베드로는 대대로 전세계의 모든 믿는 백성에게 그리고 교회에 예수님의 제자로 수제자로 알려지고 기억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참으로 신비롭고 아름답습니다.
물고기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본 베드로처럼
세상보다 하나님 한분으로 만족하고 감격하는
주님 제자 되기를 원합니다.
생활의 폭이 좁아지고 정신적으로 편협해지는건 아닌지..세상적으로 생각이 들지만
베드로의 인생을 보면 완전 반대임을 알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으면 이스라엘 작은 마을의 어부로 살았겠지만 베드로는 대대로 전세계의 모든 믿는 백성에게 그리고 교회에 예수님의 제자로 수제자로 알려지고 기억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참으로 신비롭고 아름답습니다.
물고기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본 베드로처럼
세상보다 하나님 한분으로 만족하고 감격하는
주님 제자 되기를 원합니다.

레이즈업2023-02-20 15:50
< 예수님. 한 눈 팔지 마세요! >
세상에서는 대의명분을 추구한다는 공명심으로 소수의 이익이 무시되거나 심지어 많은 사람들의 목숨마저 하찮은 것으로 치부되곤 합니다. 수백만 명의 유대인이 희생된 ‘홀로코스트’가 그랬고, 스탈린의 만행으로 우리에게는 덜 알려진 ‘홀로도모르’가 그랬습니다. 그 외의 인류 역사에 있어서 많은 동종의 사건들이 있어왔습니다. ‘홀로도모르’는 1932~1933년에 일어난 사건으로 스탈린이 혁명이라는 대의명분 아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유토피아라는 것을 온 세계에 알리고자 우크라이나에서 생산된 모든 곡식을 수탈하여 모스크바로 보냈기에 소련은 경제적 성공을 이루었다고 평가 받을 수도 있었지만 정작 최대의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에 사는 시민들은 기근과 굶어죽음에 무방비로 노출됨으로 300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발생시켰던 사건이었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누구보다도 혁명적인 인물이셨습니다. 장차 도래할 하나님 나라가 진정한 유토피아라는 사실을 알리고자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에게 있어서 대의명분은 천국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느 세상 지도자들처럼 대의명분을 추구한다는 명목하에 소수의 이익을 무시하거나 개인의 사정을 묵살하지 않으셨습니다. 누가복음 5장 1절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많은 무리들에게 둘러쌓인채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계셨습니다. 자신을 둘러싼 많은 무리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것이야말로 예수께서 온전히 집중하셔야 할 대의명분이었습니다. 예수의 입술은 무리들을 향해 열려져야 하며 예수의 손과 발은 천국 복음을 전하는데 온전히 사용되어져야 합니다. 또한 예수의 시선은 무리들을 향해 흔들림 없이 고정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2절을 보면 무리들에게 고정되어야 할 예수의 시선이 갑자기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마치 멍하니 한 눈을 팔고 계신 예수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2절) “호숫가에 두 배가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예수님이 응시했던 곳은 바로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으나 아무런 소득이 없었던, 심신이 지쳐있었던 베드로였습니다. 많은 무리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대의명분)을 잠시 멈추고 베드로 한 개인을 바라보셨으며 한 개인의 배에 오르셨습니다. 이것은 분명 베드로 한 개인을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께서 대의명분을 포기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베드로의 배에 올라 잠시 중단한 천국 복음을 무리들에게 전파하셨고 결국 이 말씀은 베드로에게 큰 변화를 일으켜 주었습니다. 5천명, 4천명을 먹이신 이적은 무리들의 베고픔과 먼 거리에서 온 자들이 돌아가는 길에 굶어 죽을 수도 있다는 예수님의 사랑의 마음에서 흘러나왔습니다. 예수님은 천국 복음이라는 대의명분에 충실하면서도 무리들의 베고픔을 보셨고 먼 거리에서 온 자들의 사정을 깊이 헤아리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대의명분 아래 결코 소수의 이익을 무시하거나 개인의 사정을 묵살하지 않으셨습니다. 베드로의 상황을 깊이 헤아리고 계셨고 무리들의 베고픔을 걱정하셨습니다.
지금도 우리의 사정을 알고 계시며 우리의 삶 속에 찾아와 우리를 위로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고 경배합니다!
세상에서는 대의명분을 추구한다는 공명심으로 소수의 이익이 무시되거나 심지어 많은 사람들의 목숨마저 하찮은 것으로 치부되곤 합니다. 수백만 명의 유대인이 희생된 ‘홀로코스트’가 그랬고, 스탈린의 만행으로 우리에게는 덜 알려진 ‘홀로도모르’가 그랬습니다. 그 외의 인류 역사에 있어서 많은 동종의 사건들이 있어왔습니다. ‘홀로도모르’는 1932~1933년에 일어난 사건으로 스탈린이 혁명이라는 대의명분 아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유토피아라는 것을 온 세계에 알리고자 우크라이나에서 생산된 모든 곡식을 수탈하여 모스크바로 보냈기에 소련은 경제적 성공을 이루었다고 평가 받을 수도 있었지만 정작 최대의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에 사는 시민들은 기근과 굶어죽음에 무방비로 노출됨으로 300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발생시켰던 사건이었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누구보다도 혁명적인 인물이셨습니다. 장차 도래할 하나님 나라가 진정한 유토피아라는 사실을 알리고자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에게 있어서 대의명분은 천국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느 세상 지도자들처럼 대의명분을 추구한다는 명목하에 소수의 이익을 무시하거나 개인의 사정을 묵살하지 않으셨습니다. 누가복음 5장 1절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많은 무리들에게 둘러쌓인채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계셨습니다. 자신을 둘러싼 많은 무리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것이야말로 예수께서 온전히 집중하셔야 할 대의명분이었습니다. 예수의 입술은 무리들을 향해 열려져야 하며 예수의 손과 발은 천국 복음을 전하는데 온전히 사용되어져야 합니다. 또한 예수의 시선은 무리들을 향해 흔들림 없이 고정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2절을 보면 무리들에게 고정되어야 할 예수의 시선이 갑자기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마치 멍하니 한 눈을 팔고 계신 예수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2절) “호숫가에 두 배가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예수님이 응시했던 곳은 바로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으나 아무런 소득이 없었던, 심신이 지쳐있었던 베드로였습니다. 많은 무리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대의명분)을 잠시 멈추고 베드로 한 개인을 바라보셨으며 한 개인의 배에 오르셨습니다. 이것은 분명 베드로 한 개인을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께서 대의명분을 포기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베드로의 배에 올라 잠시 중단한 천국 복음을 무리들에게 전파하셨고 결국 이 말씀은 베드로에게 큰 변화를 일으켜 주었습니다. 5천명, 4천명을 먹이신 이적은 무리들의 베고픔과 먼 거리에서 온 자들이 돌아가는 길에 굶어 죽을 수도 있다는 예수님의 사랑의 마음에서 흘러나왔습니다. 예수님은 천국 복음이라는 대의명분에 충실하면서도 무리들의 베고픔을 보셨고 먼 거리에서 온 자들의 사정을 깊이 헤아리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대의명분 아래 결코 소수의 이익을 무시하거나 개인의 사정을 묵살하지 않으셨습니다. 베드로의 상황을 깊이 헤아리고 계셨고 무리들의 베고픔을 걱정하셨습니다.
지금도 우리의 사정을 알고 계시며 우리의 삶 속에 찾아와 우리를 위로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고 경배합니다!

하늘소망2023-02-24 12:18
베드로가 예수님을 처음 만나것은 아우 안드레를 통해서 였습니다.이때 예수님은 시몬을 게바(베드로)라 개명해주십니다.
그 후 어부로써 일상속에 살고 있는 베드로를 찾아 오셔서 그의 배 위에서 말씀을 전하십니다.그 날 따라 고기가 잡히지 않아 지쳐있던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의지하여 순종하므로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됩니다.이 체험을 통해 자신의 앞에 계신 분이 주님이 심을 깨달게 됩니다. 베드로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저희에게도 여러가지 경로로 말씀을 깨달게 하시고 하나님이 진정 저희 삶의 주인이심을 알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이 땅을 살면서 저희가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가 있지만 에수님이 주신 신령한 복을 기억하며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데 힘쓰게 되길 소망합니다.
그 후 어부로써 일상속에 살고 있는 베드로를 찾아 오셔서 그의 배 위에서 말씀을 전하십니다.그 날 따라 고기가 잡히지 않아 지쳐있던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의지하여 순종하므로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됩니다.이 체험을 통해 자신의 앞에 계신 분이 주님이 심을 깨달게 됩니다. 베드로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저희에게도 여러가지 경로로 말씀을 깨달게 하시고 하나님이 진정 저희 삶의 주인이심을 알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이 땅을 살면서 저희가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가 있지만 에수님이 주신 신령한 복을 기억하며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데 힘쓰게 되길 소망합니다.
어부였던 베드로가 예수님을 처음 만난곳은 게네사렛 호수가였고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본업에 충실하던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먼저 찿아오셔서 만나주셨습니다 어부로써 노하우와 풍부한 경험이 있음에도 고기가 잡히지 않아 그물을 씻고 포기하고 있을때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는 예수님에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는 모습은 쉬운 결정은 아닐것입니다 예수님을 무시하고 자기의 주장을 앞세울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자기의지를 내려놓고 순종했을때에 능력을 경험하게 되었고 곧바로 구원자하나님임을 깨닫고 죄인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베드로처럼 나의 경험과 철학 세상지식을 내려놓을때에 말씀의 능력을 경험할수 있고 내 능력이 아닌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가 얼마나 큰지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그때 비로소 나의 죄가 보입니다 내안에 선한것이 하나도 없음을 고백합니다 그것은 놀라운 영적비밀입니다 베드로도 물질을 얻는것이 목적이었다면 만선으로 인해 기뻐하는것으로 끝났을것이지만 자신이 죄인임을 알게 하신것은 예수님께서 먼저 찿아가신 목적이 이루어진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 중심적으로 바뀔때에 물질의 복을 뛰어넘어 죄인을 구원해주신 영생의 복을 받은자로써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자로 살기를 소망하게 될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