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 큰 은사인 사랑이 없을 때(고전13:1-3)

헤세드
2023-01-21
조회수 74
7

엘사2023-01-21 21:20
더욱 큰 은사인 사랑을 사모하라는 말씀이 필요한 우리인 것 같습니다. 사랑은 모든 은사의 토대가 될 정도의 큰 은사이며, 모든 은사가 참되게 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가 받은 많은 은사들에서 사랑이 빠진다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될 뿐입니다. 대단한 일을 하는 것처럼 보여도 아무것도 아니며 아무 유익도 없습니다. 모두가 사랑의 은사를 사모하고 이것이 주어진다면 주께서 주시는 풍성하고도 다양한 유익한 경험들을 하게 될 것이며 삶도 크게 변화할 것입니다. 사랑의 은사를 더욱 사모해야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셔서 우리의 삶을 구원으로 옮기셨듯이 우리에게도 사랑의 은사가 풍성해져서 성도들과 교회를 세워나가는데 유익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바울이 사랑을 바탕으로 이방인들을 위한 선교를 하고 고초를 견뎌냈듯이 우리에게도 사랑의 은사가 주어져서 기쁜 마음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일꾼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포도송이2023-01-21 21:45
사랑은 피에 역할을 한다는 구절에 은혜를 받습니다. 우리 몸이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많은 중요 요소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혈액은 각 중요 물질들을 원활하게 공급함으로써 각 지체들이 건강해져 온전한 몸으로 되어집니다. 사도바울이 맡은바 은사와 직분과 사역을 충실히 행함도 곧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하고자 하는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맑고 건강한 혈액이 아니라면 우리 몸에 이상신호가 올것입니다. 이렇듯 고린도교회 또한 나름대로 각 받은 은사와 직분대로 열심을 다해 주의 일을 행하여 왔지만 그들에게 사랑이 없음으로 많은 문제들이 일어납니다. 우리 또한 이와같다면 불협화음이 일어나고, 주의 일을 해도 아무런 유익도 되지 않는 은혜없는 자신만의 일이 될것입니다.
사도바울의 사역 중심에는 사랑이 있었음을 깨닫습니다. 말씀을 본받아 사랑을 더욱 사모하며 은사 받기를 간구합니다.
사도바울의 사역 중심에는 사랑이 있었음을 깨닫습니다. 말씀을 본받아 사랑을 더욱 사모하며 은사 받기를 간구합니다.

코람데오2023-01-21 23:18
교회를 온전히 세우기위해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지체들에게 성령께서 필요에 의해 각각의 은사를 주셨습니다 받은 은사는 사랑으로 교회의 유익을 위해 활용해야 합니다 사랑이 빠진 봉사와 섬김과 열심은 허무함과 억울함만 남게되고 결국은 다른 성도를 판단하고 비난하게되는 일이 생기게 될것입니다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가리와 같다고 했습니다 곧 자기도취로 끝난다는것입니다 자기의 황홀경에 빠져 자기만족감으로 채워진다면 성경의 진리에서도 벗어나는 일이되는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주님께서 나같은 죄인을 대속해주신 십자가의 사랑을 생각하며 주신 은사에 값없이 주신 사랑을 담아 교회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기를 원합니다 주님닮아가는 사랑의 은사를 더욱 사모하는자 되길 원합니다

오직감사2023-01-22 00:10
사랑이 없는 은사는 실패임을 깨달았습니다. 사랑은 모든 은사를 사용하는데 있어 시작(동기)과 끝(목적)이 되기 때문에 사랑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은사가 아닌 것입니다. 이처럼 사랑의 은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고 더욱.. 가장 ..많이.. 사모해야할터인데 이 사모하는 마음 또한 선물이고 은혜임을 알게됩니다. 사랑이 없어 애타하고 탄식하는 마음 주시기를..예수님 바라보며 사랑의 성품을 닮기를...사랑의 은사로 성도에게 유익이 되어 아름다운 공동체 세우는데 쓰임받길..소원합니다.

무화과2023-01-22 03:31
각각의 은사를 사모하기 전에 우리 성도들은 사랑의 은사를 사모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를 사용하는데 있어 사랑의 은사는 가장 기초가 되기 때문입니다.공동체가 생명력이 있고 건강하게 세워가는데 필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사도바울은 사랑이 없이는 방언도 예언도 어떤 능력도 산을 옮길 만한 믿음도 구제도 아무것도 아니요 유익한 것이 없는 헛된 것뿐이라 말합니다 .지금에도 많은 성도들은 눈에 보이는 은사만을 생각하는 성도가 많은것 같습니다. 다른 성도들은 어떻게 되든 자신과 하나님의 관계만 생각하며 자기중심적인 신앙생활을 합니다. 각가지 열심은 내지만 교회 안에서 열매가 없는 모습일뿐 자신에게도 아무런 유익이 없게 됩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사랑을 토대로 모든 성도가 은사를 사용할때에 서로에게 유익을 주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숙한 성도는 교회공동체를 사랑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사랑을 토대로 모든 성도가 은사를 사용할때에 서로에게 유익을 주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숙한 성도는 교회공동체를 사랑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늘소망2023-02-03 13:54
은사는 하나님이 각 성도들에게 주권적으로 주신 것으로 교회를 세워나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은사가 아무리 뛰어난 것이라 할지라도 사랑의 동기에서 유익을 주는 것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정직하고 선한 과정보다 결과와 성과가 더 중요하지만 교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본질적인 것이 빠져 있다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무리 좋아보일 지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그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중심을 보시는 주님 앞에 본질적인 것을 잃어버리지 않는 신앙생활이 되기를 소원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은사가 아무리 뛰어난 것이라 할지라도 사랑의 동기에서 유익을 주는 것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정직하고 선한 과정보다 결과와 성과가 더 중요하지만 교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본질적인 것이 빠져 있다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무리 좋아보일 지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그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중심을 보시는 주님 앞에 본질적인 것을 잃어버리지 않는 신앙생활이 되기를 소원하게 됩니다.

레이즈업2023-02-03 16:57
<사랑의 행위가 사랑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
바울은 12장 31절에서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고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보이리라’고 하면서 곧바로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31절의 ‘좋은 길(the way)’은 ‘방식 내지 동기’를 의미합니다. 사랑은 은사를 사용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식 내지 동기이여야 함을 알수 있습니다. 사랑이 없는 은사 사용은 서로에게 아무 유익도 주지 못할뿐만아니라 그 자체로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연인, 부부관계를 유지하고 깊어지게 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책임으로 다하고 헌신적이라 할 지라도 한 가지가 빠지면 그 관계는 온전해 질 수도, 깊은 만족을 경험할 수도 없습니다. 그 한가지는 바로 사랑입니다. 그래서 서로는 서로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사랑을 증명해 보이거나 반대로 상대방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사랑을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이제 반대로 교회를 향해 마치 베드로에게 하셨던 질문처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물으시고 사랑이 무엇인지 13장을 통해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13장 전체를 통해 ‘사랑’에 대한 표현 중에 기괴하다 싶을 만큼 이상한 구절이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는 3절 말씀입니다.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주는 것’과 ‘사랑’은 아무 관계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내 목숨을 내어 주는 게 어떻게 사랑이 아닐 수 있는 지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궁극적으로 바울은 사랑을 정의하면서 사랑의 행위가 아닌 사랑의 성품을 말하고 있습니다. 설교 말씀처럼 우리는 얼마든지 사랑하는 마음없이 자기 만족을 위해 즉흥적으로 또는 대의를 위해 그저 사랑의 행위(행동)를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겉으로 표하는 사랑의 행동이 아닌 우리 내면에 자리잡은 변화된 마음, 사랑의 성품입니다. 로마서 12장 1~2절에서 ‘너희 몸을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말하면서 바로 이어서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라고 말한 것처럼, 몸을 드리는 행위의 중요한 요소로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참된 예배는 그냥 내 몸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변화된 내 몸을 드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의 성령께서 우리 각자의 마음을 변화시키시고 사랑으로 모든 은사가 활용되어 서로에게 유익이 되는 거룩한 교회 공동체로 세워지기를 기도하고 바라게 됩니다.
바울은 12장 31절에서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고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보이리라’고 하면서 곧바로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31절의 ‘좋은 길(the way)’은 ‘방식 내지 동기’를 의미합니다. 사랑은 은사를 사용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식 내지 동기이여야 함을 알수 있습니다. 사랑이 없는 은사 사용은 서로에게 아무 유익도 주지 못할뿐만아니라 그 자체로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연인, 부부관계를 유지하고 깊어지게 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책임으로 다하고 헌신적이라 할 지라도 한 가지가 빠지면 그 관계는 온전해 질 수도, 깊은 만족을 경험할 수도 없습니다. 그 한가지는 바로 사랑입니다. 그래서 서로는 서로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사랑을 증명해 보이거나 반대로 상대방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사랑을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이제 반대로 교회를 향해 마치 베드로에게 하셨던 질문처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물으시고 사랑이 무엇인지 13장을 통해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13장 전체를 통해 ‘사랑’에 대한 표현 중에 기괴하다 싶을 만큼 이상한 구절이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는 3절 말씀입니다.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주는 것’과 ‘사랑’은 아무 관계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내 목숨을 내어 주는 게 어떻게 사랑이 아닐 수 있는 지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궁극적으로 바울은 사랑을 정의하면서 사랑의 행위가 아닌 사랑의 성품을 말하고 있습니다. 설교 말씀처럼 우리는 얼마든지 사랑하는 마음없이 자기 만족을 위해 즉흥적으로 또는 대의를 위해 그저 사랑의 행위(행동)를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겉으로 표하는 사랑의 행동이 아닌 우리 내면에 자리잡은 변화된 마음, 사랑의 성품입니다. 로마서 12장 1~2절에서 ‘너희 몸을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말하면서 바로 이어서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라고 말한 것처럼, 몸을 드리는 행위의 중요한 요소로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참된 예배는 그냥 내 몸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변화된 내 몸을 드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의 성령께서 우리 각자의 마음을 변화시키시고 사랑으로 모든 은사가 활용되어 서로에게 유익이 되는 거룩한 교회 공동체로 세워지기를 기도하고 바라게 됩니다.
우리가 교회에 모일 때에 우리의 한 몸됨은 오직 객관적인 진리인 성경 말씀에 함께 순종할 때만 이루어 질 수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과 구별되어 상호협력하고 존중하는 공동체로 나갈 수 있기위해 우리가 더욱 사모해야할 큰 은사는 사랑이라고 성경은 명령하고 있습니다 사랑이 없는 지식과 방언과 예언과 몸을 불사르는 봉사로는 교회를 세울수도 나에게 어떤 유익도 없음을 선포합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장부터 바울이 가르친 고린도 교회의 모든 문제는 놀라운 은사 가운데 사랑이 없기 때문에 발생한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부어주신 은사를 사랑없이 행할 때 교회는 교회다워질 수 없으며 그러기에 영적으로 어떤 유익을 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들을 세워가십니다 교회가 하나님이 주신 객관적 진리를 믿고 보존할 때 그러므로 하나되어 사랑으로 은사를 행할때 온 교회와 함께 충만한 영적 유익을 누리게 될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