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과 죽음을 바라보는 방식(고후4:13~18)
카이로스
2023-09-08
조회수 253
11
하늘소망2023-09-08 23:20
바울은 부활의 확실한 소망이 있었기 때문에 모든 고난과 위험을 감내했습니다.그리고 그는 낙담하지 않았습니다.겉사람은 계속해서 후패해 갔지만 다른 한 편으로 속사람은 날로 새롭게 되었습니다.그러므로 바울은 모든 역경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바울이 당했던 고난은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그가 당했던 고난은 혹독했고 잔인했습니다.하지만 바울은 자신의 고난이 앞에 놓인 영광의 중한것에 비하면 가벼운것이다 말합니다.보이는것(고난과 고통과 역경)은 바울에게 흔한 삶이 였지만,그는 보이지 않는것(영광 가운데 그의 자녀들에게 주실 축복과 상급)에 주목했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며...
성도의 삶 가운데 받는 고난에 매몰되지 않고 보이지 않지만 실재하는 영원하신 주님의 영광을 주목하는 삶이 되어지길 소망합니다.
말씀을 묵상하며...
성도의 삶 가운데 받는 고난에 매몰되지 않고 보이지 않지만 실재하는 영원하신 주님의 영광을 주목하는 삶이 되어지길 소망합니다.
나의양식2023-09-09 11:00
고난과 죽음은 죄인된 인간 중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감당해야할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 하지만 속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기준으로 고상하고 우아한 평안한 삶을 추구하기보다 예수의 죽음을 짊어지는 삶을 살아갑니다 기꺼이 고단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저 착해서 마음이 넓어서 신념으로서가 아닙니다 현재 고난의 경한것이 장차 받게될 영광의 중한것과 비교 할 수 없는 확실한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와 같이 우리를 다시 영광의 부활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기꺼이 고단한 삶을 사는것은 겉사람이 더 빨리 손상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날마다 새로워 지는 속사람!! 곧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이십니다 이 세상에서 나의 겉사람을 안위하게 하는 것들이 예수를위해 살아가는 고난으로 인해 없어질까 잃어버릴까 두려워하는 어리석은자가 되지 않길 소원합니다 날마다 새로워 지는 속사람의 가치를 깨달아 새언약의 일꾼의 정체성, 다른 영혼들을 살리기 위해 예수의 죽음을 짊어지므로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이 우리에게 이루어지기를 소망합니다
밀알2023-09-09 11:11
세상의 사람들은 겉사람을 보며 낙심을 많이 합니다. 낡아지고 없어지는 것을 보면서 낙심하는 것은 일반적인 상식에도 맞지 않았지만, 저 역시도 겉사람에 집중했었습니다. 이제는 겉사람에 가치를 두기보다 속사람에 가치를 두고 있어, 세상안에서 고난이 찾아왔을때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고난속에서 미래의 소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속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중생한 사람들만 알 수 있습니다. 겉사람의 낡아짐은 피할수 없지만, 속사람은 예수의 몸을 짊어질수록 예수의 생명을 몸을 통해 드러낼수록 새로워집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믿음으로 보이지 않는 몸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동안 보이지 않는 속사람의 새로워짐과 영원한 부활의 몸에 주목하면서 살기를 기도드립니다.
포도송이2023-09-09 21:34
하루하루 삶을 살아가면서 삶의 가치의 중요성을 어디에 두고 무엇을 향하여 나아가는지 생각해봅니다. 분명 우리는 새언약의 일꾼으로 부름을 받았고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럼에도 삶의 잣대는 여전히 눈 앞에 보이는 세상적인 것에만 맞춰져 있는것 같습니다.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 진 사도바울은 일상의 삶을 고난을 고난으로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 영원히 있을 부활의 소망을 바라보는 굳건한 믿음이었습니다. 우리의 육신은 제한적입니다. 겉사람은 낡아지고 없어집니다. 좀더 중한 삶을 바라보며 주신 직분과 사명자로 말씀가운데 날마다 내 안의 속사람이 새로워지길 원합니다.때론 많은 유혹들이 삶을 힘들게 할때도 있지만 고난과 환난을 역으로 바라보았던 사도바울의 삶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습니다. 영원히 함께할 부활의 소망을 바라보며 언제나 말씀앞에 거하는 삶이 되길 기도합니다.
엘사2023-09-09 22:06
바울은 고난 중에도 예수와 함게 부활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음으로 소망을 갖고 살아갔습니다. 이 고난은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졌기에 받는 고난이기에 예수님안에서 영광스럽게 부활할 몸을 믿기에 겉사람의 고통스러움을 참아내고 속사람으로 날마다 새롭게 살아갈수 있었습니다. 바울과 같은 새언약의 일꾼된 우리역시 그와 같이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예수의 생명으로 꽃피우며 부활하여 영광으로 나아갈 날의 소망을 갖고 살아가야 합니다. 몸은 죽음으로 나아가지만 영광의 그날을 위해 잠시잠깐의 시간을 견뎌내고 믿음으로 예수의 생명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나의 속사람이 날마다 새로워지기를 바라며 하늘소망을 품고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나의 속사람이 날마다 새로워지기를 바라며 하늘소망을 품고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마라나타2023-09-09 22:25
새 언약의 일꾼 된 우리들이 기억해야 할 주제는 고난과 부활입니다. 고난은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졌기에 받은 고난입니다. 우리의 몸은 고난 가운데 있을 지라도 영광스럽게 다시 부활할몸입니다. 바울의삶은 고단했지만 부활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때문에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긍휼의 은혜가 있기에 고난이 왔을때 힘들지만 낙심하지 않고 승리하며 이겨내는 힘이 생김니다.우리가 알아야 할 몸의 원리는 우리에게는 두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바로 겉사람과 속사람입니다. 겉사람은 낡아 지는 사람이요, 속사람은 날로새로워지는 사람입니다. 낡아지는 겉사람을 위해서 살지말고 속사람을 위해서 살아가길 원하며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질수록,예수의 생명을 몸을 통해 드러낼수록 새로워지길 기도하며 몸의 고난과 환난은 부활의 몸으로 가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이 싫고 힘들다고 회피하지 않고 바른 믿음위에 서 있기를 기도합니다.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긍휼의 은혜가 있기에 고난이 왔을때 힘들지만 낙심하지 않고 승리하며 이겨내는 힘이 생김니다.우리가 알아야 할 몸의 원리는 우리에게는 두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바로 겉사람과 속사람입니다. 겉사람은 낡아 지는 사람이요, 속사람은 날로새로워지는 사람입니다. 낡아지는 겉사람을 위해서 살지말고 속사람을 위해서 살아가길 원하며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질수록,예수의 생명을 몸을 통해 드러낼수록 새로워지길 기도하며 몸의 고난과 환난은 부활의 몸으로 가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이 싫고 힘들다고 회피하지 않고 바른 믿음위에 서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직감사2023-09-09 22:42
내게 두 종류의 사람, 겉사람과 속사람이 있다는 것을 아는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말씀이었습니다. 아는것과 모르는것은 삶의 방향을 완전히 뒤바꾸는 엄청난 차이인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나의 속사람을 통해 증명되기 때문입니다. 겉사람은 예수님을 증거할 수 없습니다. 겉사람으로 시간과 공간의 제약 속에 살고 있지만 주님을 증거할 수 있는 이유는 속사람이 말씀과 성령으로 매일 새로워지며 고난을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으며 이겨내고 부활소망으로 영원히 승리하기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겉사람에 소망을 두지 않을 수 있습니다. 속사람의 거룩과 성숙을 통해 예수그리스도만이 증거되기를 원합니다.
Coram Deo2023-09-10 09:37
어렸을적 아직 우리나라가 그리 잘사는 나라가 아니었지요.. 주변의 많은 분들은 먹고사는 문제로 힘들어 하셨고, 어릴적 제 귀에 들리는 어른들의 말씀은 교회 나가면 문제가 해결되니 교회에 가보자 였습니다. 자연스레 교회에 가면 의식주가 해결되고 내가 잘된다는 생각이 굳어져 왔지 싶습니다. 어느정도 나이가 들면서, 교회를 오다 가다를 반복하는 신세가 되었지만 어김없이 삶이 고달파져야지만 교회를 가게 되는 예수님을 믿지않는 그런 우수꽝스런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드문드문 읽는 성경에는 결코 나에게는 해당되면 안되는 말씀이 참 많았죠.. 예를 들어 십자가를 져야 한다거나. 나의 이름으로 인하여 핍박을 받는다거나...등등요..
우여곡절 끝에 종교로써의 기독교가 아닌 진리로써 맞닥뜨린 말씀에는 참 대단한 힘이 있었습니다. 이런 파라독스도 없다 싶을정도로, 죽어야 산다거나, 내 자아가 없어져야 진리를 알 수 있다거나, 겉은 낡아지지만 속은 새로워 진다거나, 고난이 축복이라거나 세련된 이성으로써는 결코 받아 들일 수 없는 말씀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이상하죠? 예수님이 저의 주인이 되시니 주님의 말씀을 모두 신뢰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예수님과 함께 하는 그 순간들은 힘들어도 넘어가고 , 죽을 만큼 힘이 든다 할지라도 죽음보다 큰 약속이 있으니 인내하게 되지 싶습니다. (이건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은 아니고 많은 실패와 도전의 과정이었어요..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것 같아요)
세상의 기준이 통용되는 이 나라에서, 하나님 말씀의 기준으로 살아가다보면, 조롱도 받고 바보 취급을 당하기도 하죠. 다방면에서 피해를 받을 수도 있어요. 그래도 괜찮아요. 저는 궁극적인 내 인생의 끝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미리 알려 주신 말씀으로 알고 있으니까요. 죽음을 통과해서 다시 살아가는 거죠. 예수님처럼요.
이 세상에서도 성공한 사람보고 그러잖아요.. '앞일을 어떻게 그렇게 예견하고 투자를 하셨나요? 그래서 이리 부자가 될 수 있는 그런 지혜가 어디서 왔나요?' 허물어지는 세상을 잠시 스쳐가는 동안도 치열하게 공부하고 앞으로의 세상을 판단해서 보이지 않는 결과를 보는 사람들 보고 대단하다고 그러는데요. 영원한 시간을 내가 존재하게 될텐데 그것도 사랑과 평강이 넘쳐나는 환경에서 말이죠... 그런걸 아는 사람은 육신의 괴로움을 짊어지고 있지만, 참을 수 있어요.. 평범한 나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바울 선생님이 알려 주셨기 때문에 제 인생에 적용하면서 '지금'이라는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것 같아요. 이쯤 되면 또 하나님을 두 팔들고 찬양 할 수 밖에 없지 않나요? 이렇게 좋으신 분을 말이죠...
우여곡절 끝에 종교로써의 기독교가 아닌 진리로써 맞닥뜨린 말씀에는 참 대단한 힘이 있었습니다. 이런 파라독스도 없다 싶을정도로, 죽어야 산다거나, 내 자아가 없어져야 진리를 알 수 있다거나, 겉은 낡아지지만 속은 새로워 진다거나, 고난이 축복이라거나 세련된 이성으로써는 결코 받아 들일 수 없는 말씀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이상하죠? 예수님이 저의 주인이 되시니 주님의 말씀을 모두 신뢰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예수님과 함께 하는 그 순간들은 힘들어도 넘어가고 , 죽을 만큼 힘이 든다 할지라도 죽음보다 큰 약속이 있으니 인내하게 되지 싶습니다. (이건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은 아니고 많은 실패와 도전의 과정이었어요..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것 같아요)
세상의 기준이 통용되는 이 나라에서, 하나님 말씀의 기준으로 살아가다보면, 조롱도 받고 바보 취급을 당하기도 하죠. 다방면에서 피해를 받을 수도 있어요. 그래도 괜찮아요. 저는 궁극적인 내 인생의 끝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미리 알려 주신 말씀으로 알고 있으니까요. 죽음을 통과해서 다시 살아가는 거죠. 예수님처럼요.
이 세상에서도 성공한 사람보고 그러잖아요.. '앞일을 어떻게 그렇게 예견하고 투자를 하셨나요? 그래서 이리 부자가 될 수 있는 그런 지혜가 어디서 왔나요?' 허물어지는 세상을 잠시 스쳐가는 동안도 치열하게 공부하고 앞으로의 세상을 판단해서 보이지 않는 결과를 보는 사람들 보고 대단하다고 그러는데요. 영원한 시간을 내가 존재하게 될텐데 그것도 사랑과 평강이 넘쳐나는 환경에서 말이죠... 그런걸 아는 사람은 육신의 괴로움을 짊어지고 있지만, 참을 수 있어요.. 평범한 나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바울 선생님이 알려 주셨기 때문에 제 인생에 적용하면서 '지금'이라는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것 같아요. 이쯤 되면 또 하나님을 두 팔들고 찬양 할 수 밖에 없지 않나요? 이렇게 좋으신 분을 말이죠...
Jesus is the Way2023-09-10 12:46
크리스찬으로 살아가면서 겉사람과 속사람이 있는것을 인정하고, 겉사람보다는 속사람을 위해 살아가는 삶이 더 가치있고 보람됨을 알게되었습니다. 바울사도같이 고난을 당하지는 않지만 매일매일 크리스찬으로써 다르게 사는것과 쉽게 질타 당하는 삶을 살아가면서 더 예수님의 십자가와 그 복음에 집중하며 영원한 집의 소망을 두는 삶을 가르쳐주는 말씀이었습니다.
레이즈업2023-09-12 14:32
<믿음으로 산다는 것>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정작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깊이 있게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막연히 보이지 않는 천국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느끼며 살아간다든지, 교회의 여러가지 봉사와 섬김에 열심을 낸다든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간섭하심과 응답을 체험한다든지, 골방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즐거워한다든지, 다분히 개인적이고 감정적이며 체험적인 개념으로 생각해 왔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본문 말씀에서는 믿음으로 산다는 것을 크게 2가지로 정의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결코 제가 생각해왔던 개인적이고 감정적이며 체험적이지 않고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개념인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란 첫째는 '말하는 것' 이었습니다. 13절 "기록한 바 내가 믿는 고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도 믿는 고로 또한 말하노라". 믿음을 말하는 것으로 동일시하고 있고 믿음과 말하는 것이 언제나 함께 한다는 것을 알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한다는 것일까? 그것은 다음절에 이어지고 있는 부활에 대한 사실임을 알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산다고 했을때 그것은 부활에 대한 실제적인 사실을 말하는 삶(복음 증거)임을 알게 됩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의 두번째 의미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이었습니다. 15절에 "모든 것을 너희를 위하여 한다"고 하면서 17절에 '환난"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은 곧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우는 삶을 말하는 것으로 이를 통해 예수의 생명이 비로서 우리 몸을 통해 나타나고 발현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부활의 실제적인 사실을 침묵하지 않고 입을 열어 말하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함으로 예수의 생명을 나타내고 드러내는 삶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결코 추상적이고 감상적이며 고상한 개념이 아니라 침묵을 깨고 닫혀진 입을 열어 말해야하는 용기를 말하는 것이며 우리의 몸에 예수의 고난의 흔적을 새겨가는 실제적인 삶이라는 것을 느끼고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정작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깊이 있게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막연히 보이지 않는 천국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느끼며 살아간다든지, 교회의 여러가지 봉사와 섬김에 열심을 낸다든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간섭하심과 응답을 체험한다든지, 골방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즐거워한다든지, 다분히 개인적이고 감정적이며 체험적인 개념으로 생각해 왔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본문 말씀에서는 믿음으로 산다는 것을 크게 2가지로 정의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결코 제가 생각해왔던 개인적이고 감정적이며 체험적이지 않고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개념인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란 첫째는 '말하는 것' 이었습니다. 13절 "기록한 바 내가 믿는 고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도 믿는 고로 또한 말하노라". 믿음을 말하는 것으로 동일시하고 있고 믿음과 말하는 것이 언제나 함께 한다는 것을 알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한다는 것일까? 그것은 다음절에 이어지고 있는 부활에 대한 사실임을 알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산다고 했을때 그것은 부활에 대한 실제적인 사실을 말하는 삶(복음 증거)임을 알게 됩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의 두번째 의미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이었습니다. 15절에 "모든 것을 너희를 위하여 한다"고 하면서 17절에 '환난"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은 곧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우는 삶을 말하는 것으로 이를 통해 예수의 생명이 비로서 우리 몸을 통해 나타나고 발현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부활의 실제적인 사실을 침묵하지 않고 입을 열어 말하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함으로 예수의 생명을 나타내고 드러내는 삶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결코 추상적이고 감상적이며 고상한 개념이 아니라 침묵을 깨고 닫혀진 입을 열어 말해야하는 용기를 말하는 것이며 우리의 몸에 예수의 고난의 흔적을 새겨가는 실제적인 삶이라는 것을 느끼고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새언약의 일꾼들은 주께서 베풀어주신 긍휼의 은혜때문에 낙심하지 않을수 있고 예수의 죽음을 짊어짐으로 예수의 생명을 나타낼수 있었고 고난을 당하여도 가볍게 여길수있으며 영원한 영광의 부활을 소망하기에 사망을 이겨낼수 있습니다 그 능력은 오직 예수안에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미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짐을 알기에 환난 가운데서도 감사할수 있고 소망을 갖게 됩니다 사도바울은 죽음을 늘 가까이 두었습니다 그러나 고통스러워하지 않은것은 부활의 보상이 있기 때문에 낙심하지 않은것입니다 우리도 눈앞에 주어진 상황을 바라보면 또다시 넘어지고 믿음이 뒷걸음질칠때도 있지만 보이는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것은 영원하다고 했기에 그 믿음으로 살아있는동안 예수를 위해 받는 고난과 교회를 위한 희생과 헌신을기쁜마음으로 감당하며 부활의 몸으로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는데 소망을 두며 살아가야겠습니다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약속하신 말씀에 힘을 얻습니다 예수안에 죽음과 생명은 늘 연결되어 있지만 두려워하지 않음은 은혜가 우리를 덮어주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