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여덟 가지를 하지 않는것 (고전13:4-13)

헤세드
2023-02-25
조회수 66
8

밀알2023-02-25 20:38
성경은 성도들이 어떤 특정한 은사를 사모하기 전에 사랑의 은사를 사모하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없는 은사는 교회에도 나에게도 아무런 유익을 줄 수 없기 때문이며, 사랑없는 은사는 문제만 발생시키기 때문입니다.
사랑에 대한 내용 중에서 사랑은 무례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것이란 말씀이 가장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나의 잘못을 보지 못하면서 상대방에게 함부로 말하며 상처를 주지 않았는지, 다른 사람의 아픔과 기쁨을 같이 나누는 삶을 살았는지 많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살아오면서 받아왔던 사랑을 베푸는 사랑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사랑에 대한 내용 중에서 사랑은 무례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것이란 말씀이 가장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나의 잘못을 보지 못하면서 상대방에게 함부로 말하며 상처를 주지 않았는지, 다른 사람의 아픔과 기쁨을 같이 나누는 삶을 살았는지 많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살아오면서 받아왔던 사랑을 베푸는 사랑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무화과2023-02-25 22:11
교회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된 사람들이 사랑으로 함께 세워가는 곳입니다.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를 세워갈때 사랑 안에서 각자에게 주신 은사를 사용할 수 있도록 사랑의 은사를 강조합니다. 예언과 방언과 지식의 은사들은 부분적이고 어린아이와 같은 것이며 거울로 보는것 같이 희미한 것이기에 천국에서는 이 모든것은 폐하여지고 오직 사랑만이 영원하여 하나님과 함께 온전하여 질것이라 말합니다. 교회 안에서 사랑의 은사없이 부분적인 은사만을 행한다면 분란과 분열만 있을 것입니다.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는 누구를 위한 것인지 잘 생각해 봐야 합니다. 주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자들에게 주신 은사는 나를 위한 위로와 평안을 얻기위한 것이 아니기에 교회의 유익을 위한 은사 되도록 늘 노력해야 합니다.주께서 주신 은사를 잘 사용하기 위해서는 바울이 말하는 사랑의 정의와 의미들을 생각하며 사랑이신 하나님의 속성을 기억할수 있어야 합니다.

엘사2023-02-25 22:20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13장의 사랑에 대한 말씀은 모든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기에 불신자들도 이룰수 있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은 인격적 성숙을 이루어 인간애을 발전시킬수 있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더 잘 구현해 나갈수 있고 교회를 세워나가는데 적용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주신 각각의 은사는 서로 합하여야 교회를 세워나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온전하게 완전한 교회가 서게 되는 날 예언과 방언과 지식같은 은사는 모든 것이 명확해지기에, 주 예수그리스도와 하나님을 완벽하게 증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필요가 없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다른 성도들을 완전히 사랑하게 될 사랑은 그날에도 필요합니다. 영원히 존재할 사랑의 가치를 깨닫고 더욱 사모해야겠습니다. 성경에서 분명히 말하는 사랑에 대해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할 것을 지켜나가야 겠습니다. 사랑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그날까지 나의 고집을 꺾고 사랑을 추구해나가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사랑으로 은사를 행하고 교회가 더욱 견고하게 세워나가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코람데오2023-02-25 22:22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말하는데 지금까지는 일방적으로 주는 사랑으로 알고 믿어왔습니다 고린도전서13장에서 사랑은 7가지 하는것과 8가지 하지 말아야 하는것을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국 하지않는것들을 보면 더욱 나의 마음을 지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마음에 예수님이 함께 계시다면 이또한 성령이 다스려주실때 가능함을 믿습니다 성도로써 나의 유익을 구하기보다 공동체와 다른성도의 유익을 먼저 살핀다면 주께서 기뻐하시고 감당할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실것입니다 사랑의 은사는 영원하기에 사모해야 될것이지만 방언과 예언과 지식의 은사는 이땅에서 온전한교회를 세울때 필요하지만 결국은 아무것도 아닌 때가 옵니다 하나님의 속성인 사랑만이 영원하기에 말씀따라 살아갈때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어갈것입니다 사랑은 추상적인것이 아니라 말씀에 구체적으로 알려주신것처럼 사랑의은사를 받으면 가능한일이기에 더욱 사랑의 은사를 사모해야 되겠습니다
결국 하지않는것들을 보면 더욱 나의 마음을 지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마음에 예수님이 함께 계시다면 이또한 성령이 다스려주실때 가능함을 믿습니다 성도로써 나의 유익을 구하기보다 공동체와 다른성도의 유익을 먼저 살핀다면 주께서 기뻐하시고 감당할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실것입니다 사랑의 은사는 영원하기에 사모해야 될것이지만 방언과 예언과 지식의 은사는 이땅에서 온전한교회를 세울때 필요하지만 결국은 아무것도 아닌 때가 옵니다 하나님의 속성인 사랑만이 영원하기에 말씀따라 살아갈때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어갈것입니다 사랑은 추상적인것이 아니라 말씀에 구체적으로 알려주신것처럼 사랑의은사를 받으면 가능한일이기에 더욱 사랑의 은사를 사모해야 되겠습니다

포도송이2023-02-25 23:38
우리에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말씀대로 행하며 그 뜻과 의를 향하여 나아가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성도들은 나름대로 믿음으로서 각 은사를 받은줄 믿습니다. 은사와 은사가 모이고 합쳐져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건강하고 바른교회를 지향하며 세워가야 합니다. 이러한 은사 가운데 사랑이 없는 은사는 온전한 교회로 장차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할수 없을것입니다. 사랑에 대하여 성경은 구체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은사중 사랑의 은사 받기를 간구하고 사랑을 몸소 실천할때 하나님께서 보이신 사랑의 속성을 이해할수 있고 바라볼수 있겠습니다. 영원히 함께 할 사랑의 은사를 사모하며 해야할 사랑과 하지 않아야할 사랑을 소중히 간직하기를 소망합니다.

오직감사2023-02-26 09:52
여덟 가지를 하지 않는 것이 사랑임을 알려주심에 너무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시기하지 않는 것, 자랑하지 않는 것, 교만하지 않는 것, 무례히 행하지 않는 것,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는 것, 성내지 않는 것,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 것이 사랑인데 제 힘으로 할 수 없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소망이 있을때 하나님의 속성이신 사랑의 은사를 받기 위해 힘쓸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사랑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소망의 증거가 됨을 마음 속 깊이 새겨 놓습니다♡

레이즈업2023-03-08 14:33
불교, 힌두교 등과 같은 종교에서는 고행(참고 견디는 행위)을 통해 신의 축복을 받고 해탈의 경지에 다다를수 있다고 가르침니다.
그러나 이들이 추구하는 고행(참고 견디는 행위)은 기독교적인 가치와 부합하지 않는 참다운 고행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4절, 7절 말씀에 사랑은... '오래 참고' , '모든 것을 참으며, 견딘다' 라고 정의하고 있는데, '참고 견딘다'는 것은 사랑의 구체적인 행위이며 반드시 사랑을 전제로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보게됩니다. 다시말해서, '참고 견딘다' 고 했을때, 그것은 반드시 타인과의 관계속에서, 타인의 유익을 위해 행해져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타인과의 관계속에서 벗어나서, 타인의 유익은 고려되지 않은채 홀로 행해지는 고행(참고 견디는 행위)은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참다운 행위라 말할 수 없습니다.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겸손, 소망, 믿음, 온유' 등 인간의 고귀한 덕목 또한 사랑을 전제로 한 행위일때 참다운 것임을 알수 있습니다.
불교, 힌두교 등과 같은 종교에서는 궁극적으로 해탈의 경지에 이르고자 합니다. '해탈'을 인간이 이 세상에서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라고 정의한다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해탈의 경지는 무엇일까요? 인간이 이 세상에서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참다운 인간됨의 회복, 비로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존재로의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자이며 마음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이 부은바된 존재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할 수 있으며, 타인을 향해 이타적인 삶을 살아갈수 있다는 것이 감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추구하는 고행(참고 견디는 행위)은 기독교적인 가치와 부합하지 않는 참다운 고행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4절, 7절 말씀에 사랑은... '오래 참고' , '모든 것을 참으며, 견딘다' 라고 정의하고 있는데, '참고 견딘다'는 것은 사랑의 구체적인 행위이며 반드시 사랑을 전제로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보게됩니다. 다시말해서, '참고 견딘다' 고 했을때, 그것은 반드시 타인과의 관계속에서, 타인의 유익을 위해 행해져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타인과의 관계속에서 벗어나서, 타인의 유익은 고려되지 않은채 홀로 행해지는 고행(참고 견디는 행위)은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참다운 행위라 말할 수 없습니다.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겸손, 소망, 믿음, 온유' 등 인간의 고귀한 덕목 또한 사랑을 전제로 한 행위일때 참다운 것임을 알수 있습니다.
불교, 힌두교 등과 같은 종교에서는 궁극적으로 해탈의 경지에 이르고자 합니다. '해탈'을 인간이 이 세상에서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라고 정의한다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해탈의 경지는 무엇일까요? 인간이 이 세상에서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참다운 인간됨의 회복, 비로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존재로의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자이며 마음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이 부은바된 존재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할 수 있으며, 타인을 향해 이타적인 삶을 살아갈수 있다는 것이 감사가 되었습니다.

하늘소망2023-03-10 15:02
본문 말씀을 통해 사랑이 추상적인 것이 아닌 구체적인 것임을 배웠습니다.
삶에서 진정 가치있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인것 같습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족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사랑하는 성도님들과 함께 섬기며 나누었던 교제들,친구들과의 우정....
모든 것들이 사라져도 사랑은 영원하기에 주님 앞에 나아갔을 때 제가 나눴던 사랑이 제 삶을 평가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별히 주님이 사랑하신 이 교회를 세워가기 위해 말씀에서 명시하고 있는 사랑을 사모하며
그 사랑이 삶으로 나타날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삶에서 진정 가치있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인것 같습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족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사랑하는 성도님들과 함께 섬기며 나누었던 교제들,친구들과의 우정....
모든 것들이 사라져도 사랑은 영원하기에 주님 앞에 나아갔을 때 제가 나눴던 사랑이 제 삶을 평가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별히 주님이 사랑하신 이 교회를 세워가기 위해 말씀에서 명시하고 있는 사랑을 사모하며
그 사랑이 삶으로 나타날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모든 사람에게 사랑은 여전히 중요한 가치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자로 부르셨기에 세상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기준으로 인류애를 실현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사랑에 대하여 성경은 이야기 합니다 이 가치를 실현하는 사명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사랑의 은사를 사모하고 이루기 위해 우리는 이 사랑의 은사가 교회를 위하여 주셨음을 기억해야합니다 다른 성도와 우리가 함께 지어져 갈때에 다른성도를 위해 해야할것과 하지말아야 할것을 분명하게 말씅하여주셨습니다 사랑은 하는것과 하지말아야할 구체적인 행위로 영적 싸움의 결과로 나타나야 합니다 사랑은 불분명한 추상적이기만 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다른성도들과 관계속에서 실제적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 실천해야하는 것입니다 그저그렇게 적당하게 이루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하여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유기적 관계인 교회는 살아 움직이며 세워져가며 거룩을 향하여 자라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린아이와 같아서 우리의 미숙함이 때론 교회안에서 나타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랑을 추구하며 간절히 이 은사를 사모하며 살아가고자 할때 교회는 온전하여질 수 있으며 그 속에서 살아가는 나와 다른 성도 그리고 자녀들에 이르기까지 그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게 될것입니다 온전한 것이 오는 그때까지 영원히 존재할 사랑의 은사를 사모하고 추구하며 살길 소망합니다 여전히 어린자이나 어리기에 하나님을 더 간절히 구하므로 우리를 장성한 자로 세우실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고 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