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과 마주한 기독교(15). 안명준외 17명(다함)

맑은하늘
2020-07-20
조회수 41

Ⅲ 교회역사에서 본 전염병과 기독교(7)

<15>한국 초기 기독교와 전염병(이재근)

2016년 “기독교의 발흥”이라는 제목으로 발간된 로드니 스타크의 책을 보면, 초대교회 시절 역병이 발생했을 때, 기독교인들이 어떤 모습을 보여주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2-3세기 로마에서 역병이 발생해 최소 4분의 1에서 초대 3분의 1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사망했습니다. 스타크는 사람들이 역병으로 희망을 잃어 갈 때, 기독교인들은 사망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제공하고 몸을 아끼지 않고 돌보며 위기를 기회로 바꾼 덕에 4세기가 되기도 전에 주류 신앙인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역병이 유행하는 가운데 그리스 인본주의 철학이나 타 종교는 삶의 의미에 대한 해답을 주지 못했지만 기독교는 해답을 주었습니다. 251년 키프리아누스 주교의 말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는 기독교인이 역병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에 대해서 역병과 흑사병이 각 사람의 공의를 검증하고 인류 정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며, 병든 자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은 힘겨운 훈련과정이지만 면류관을 예비하고 앞으로 전진하는 영광이 된다고 했으며, 역병으로 사망한 사람들은 먼저 부름 받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역병이 창궐했을 때, 기독교인은 타 종교인들보다 우월하게 대처했습니다. 이교도들은 병자를 내쫓고 도망치고 죽기도 전에 내다버리고 했지만 기독교인들은 나그네를 너그럽게 대하고 죽은 자의 무덤을 관리하며, 가난한 동료 뿐 아니라 신자가 아닌 사람들도 구제했습니다.

기독교인은 타종교인보다 사망률이 낮았는데 이유는 환대와 섬김의 정신 때문이었습니다. 일상이 완전히 마비되고 의료 혜택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간호로 물과 음식을 제공하고 아픈 몸을 닦이고 쉬게 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회복과 더불어 사망률 저하를 기대할 수 있었습니다. 기독교인의 사망률이 낮았던 만큼 출생률과 출산율도 높았기에 인구 대 기독교인 증가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보잘 것 없는 소수파 운동에 지나지 않았던 기독교가 로마를 지배하는 종교로 부상하는 과정에서 전염병이 매개가 되었던 현상은 구한말 초기 한국 개신교 역사에서도 비슷한 점을 볼 수 있습니다. 구한말 의사 선교사였던 앨런과 언더우드의 아내 릴리어스 호턴 언더우드 등의 기록을 보면 한국에는 다양한 역병이 발생했는데, 천연두와 콜레라가 가장 큰 피해를 주었습니다. 19세기 이후 계몽주의적 과학 혁명의 일환으로 현대 의료 체계를 구축한 서양인의 눈에는 역병을 귀신의 노여움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한국들이 너무도 원시적으로 보였습니다. 선교사들은 병원을 세워 역병을 치료했고 선교사들이 세운 병원을 통해서 역병에서 회복된 사람들은 기독교로 개종하기도 했습니다. 선교사들의 의료 지침을 따른 한국 기독교인의 사망률은 타종교인에 비해서 낮아지게 되었습니다.

2-3세기 초대교회의 기독교인들은 말씀에 따라 사랑과 실천을 보여준 사랑의 종교였다면 19세기 한국에서의 기독교는 단순히 사랑의 종교를 넘어 근대 의학과 과학으로 도움을 주는 계몽의 종교였습니다.

0